지방행=실패? 서울 떠날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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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보다 수도권 대학을 가고 싶어서, 더 좋은 일자리를 얻고 싶어서, 나중에 자녀를 키운다면 서울이 나을 것 같아서. 이유는 달라도 우리가 향하는 방향은 오랫동안 비슷했다. 서울로, 혹은 적어도 서울과 가까운 곳으로. 실제로 내 주변에 서울살이에 만족하는 친구들은 많다. 빼곡한 회사와 전시, 늦은 밤에도 가능한 배달까지. 무엇을 하든 선택지가 많다. 그런 도시를 굳이 떠날 이유가 없다는 말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데 나는 요즘 자꾸 반대 방향을 생각한다. 낑겨 타는 지하철 대신 여유로운 출근길을, 치열한 경쟁 대신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을 상상한다. 서울에 처음 올라올 때 품었던 마음과는 정반대로,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삶을 상상하게 된다. 문제는 서울이 싫어서 떠난다고 한들, 그 삶이 정말 녹록할까. 직장은 어디에서 구할지, 병원과 교통은 괜찮을지, 문화생활은 포기해야 하는지, 친구도 없는 곳에서 외롭지는 않을지. 결국 ‘서울을 떠날까?’라는 질문보다 먼저 답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인구 절반이 아등바등 이곳에서
대한민국 사람 둘 중 하나는 수도권에 산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국내인구이동통계를 보면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사람은 41만 9천 명. 반대로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이동한 사람은 38만 명이었다. 결과적으로 수도권에는 약 3만 9천 명이 순유입됐고, 특히 수도권의 20대 순유입 규모가 다른 연령대보다 컸다. 뉴스에서 ‘탈서울’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그 발걸음의 상당수는 서울을 벗어나 경기·인천 등 수도권 안에서 옮겨간 것에 가까웠다.

더 벌고, 덜 행복하다
서울로, 정확히는 수도권으로 향하는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일자리와 기회, 그리고 그 곁을 채우는 인프라. 실제로 통계청이 2024년 가을 발표한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과 비수도권에 남은 청년의 삶의 질 비교’에 따르면,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의 연간 총소득은 2,743만 원으로 비수도권에 남은 청년(2,034만 원)보다 709만 원, 비율로는 약 35% 많았다.
하지만 이 흐름에는 반전이 있다.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의 부채는 2,642만 원으로 잔류 청년(909만 원)의 세 배에 가까웠고, 그 대부분은 주택 관련 빚이었다. 1인당 주거 면적은 32.4㎡로 잔류 청년(36.2㎡)보다 좁았으며, 최근 1년간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 역시 42.0%로 잔류 청년(29.7%)보다 12.3%포인트 높았다. 장시간 근로 경험도 마찬가지. 결국 삶의 행복감을 묻는 질문에서 수도권 이동 청년은 6.76점, 비수도권 잔류 청년은 6.92점을 기록했다. 심지어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의 행복감은 7.26점으로 비교 집단 가운데 가장 높았다. 정말 서울살이가 행복할까? 라는 질문에 이 통계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너무나도 많은 선택지
물론 이 통계만으로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이 더 불행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행복보다 더 높은 소득과 경력을 우선해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더 많은 기회를 얻는 것과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언제나 같은 말은 아니라는것.
서울에 있으면 하고 싶은 것도, 살 수 있는 것도 많다. 문제는 어느 순간 그 많은 선택지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가는 식당, 새로 생긴 공간, 비슷한 옷과 집,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좇다 보면 ‘내가 좋아해서’ 하는 것과 ‘다들 이렇게 사니까’ 하는 것의 경계가 흐려진다. 더 많이 소비하려면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많이 벌기 위해 다시 더 치열하게 일해야 한다.

과연 돌아가면 행복할까
여기까지 읽으면 ‘그렇게 싫으면 내려가면 되잖아’라는 결론에 도착하기 쉽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산업연구원이 올해 공개한 ‘청년의 지역 이동과 정착 보고서’를 보면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뒤 정착한 청년의 비율은 42.7%였지만, 반대로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이동해 정착한 비율은 21.3%에 그쳤다. 특히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내려간 청년 가운데 34.9%는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왔고, 지방에 머문 기간은 평균 1.6년에 불과했다.
한국은행 포항본부의 연구도 비슷한 현실을 보여준다. 전국 만 19~39세 청년에게 수도권 대신 포항에서 일하려면 어느 정도의 추가 보상이 필요한지 물었더니, 평균 17.4%의 임금 프리미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연봉 4천만 원이라면 약 690만 원을 더 받아야 포항 근무를 고려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돈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종합병원까지 90분 이상 걸리는 지역에서는 약 10.7%, 대중교통 대신 자가용이 사실상 필수인 환경에서는 약 10.8%의 추가 보상을 요구했다.
흥미로운 건 대구·경북 출신 청년에게서는 포항 근무에 대한 추가 보상 요구가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방은 한 덩어리가 아니다. 아무 연고 없는 도시로 내려가는 것과 가족과 친구, 익숙한 생활권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선택이다. 그래서 내가 고향을 생각하는 이유 역시 단순히 ‘서울이 싫어서’라고만 설명하기 어렵다. 이미 알고 있는 동네와 만나고 싶은 가족, 오래된 친구가 있다는 것 역시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 하나의 인프라다.

같은 도시, 다른 답
지난 7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서울에서 태어나 학교와 직장까지 다니다가 연고 없는 지방 광역시로 내려간 직장인의 글이 화제가 됐다. 작성자는 서울의 집은 세를 주고 지방의 신축 아파트에서 4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그가 지방행을 선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었다. 근무지를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직종이었다는 것.
지방에서의 생활은 예상보다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해도 길이 막히는 날까지 30분이면 충분했고, 백화점과 프랜차이즈, 문화생활을 즐길 공간도 웬만큼 갖춰져 있었다. 조금만 이동하면 자연을 누릴 수도 있었다. 서울보다 선택지는 적지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하다는 이야기였다.
이 글에는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와 무한경쟁에 도태되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는 게 뼈저리게 느껴진다”는 공감의 댓글도, “수도권 살다 지방에서 살면 대부분 다시 이직해서 돌아갈 생각을 할 것”이라는 반박도 함께 달렸다. 결국 이 논쟁에는 정답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서울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방 광역시가 각자의 정답일 뿐이다.

서울이 가진 것보다 내가 원하는 것
서울은 분명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좋은 일자리와 병원, 학교, 문화시설, 새로운 기회가 한곳에 모여 있고, 그 힘 때문에 지금도 많은 청년이 서울을 향한다. 하지만 서울이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 모든 것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은 다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서울을 떠나는 문제를 하향이나 포기의 목록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내가 원하는 하루를 먼저 떠올려 본다. 출퇴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고 싶은지, 어느 정도의 연봉이 필요한지, 가족과 얼마나 가까이 살고 싶은지, 문화생활과 커리어의 선택지가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조건을 만족하는 곳이 서울인지, 수도권인지, 광역시인지, 혹은 내가 자란 고향인지 뒤늦게 지도를 펼쳐본다. 모두가 한 방향을 보고 달린다는 이유만으로 그 방향이 내 정답일 필요는 없다. 일하고 싶은 곳에서 살 것인가, 살고 싶은 곳에서 일할 것인가.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르고, 어느 쪽을 택하든 결국 내가 살아보며 만들어가는 선택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