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여관에 모여든 창작자들, 금호여관 이야기
Editor Comment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곧 행복을 뜻한다. 그러나 그 행복이 순간에 그치지 않고 삶 안에서 꾸준히 이어지기 위해서는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반이 필요하다. 금호여관 설립자 이정은 바로 이 지속 가능한 행복을 이야기한다. 창작자에게 아틀리에는 작업의 출발점이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결정적인 공간. 대중 역시 창작자의 치열한 탐구와 실험 그리고 독창적인 시선이 켜켜이 쌓인 흔적을 체감할 때 비로소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금호시장 한편에 문을 연 WALT 금호(금호여관)는 이들과 대중을 연결하는 내밀한 통로가 된다. 오래된 여관을 개조한 이곳은 한 지붕 아래 젊은 창작자들이 이끄는 미술, 공예, 패션, 조형 등 다양한 분야의 작업실이 공존하며 끊임없이 신선한 감각을 생산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자생하며 그 생명력을 유지해 나갈까. 또 이곳을 가득 채운 원석 같은 작가들을 발견해 낸 안목과 그 기준은 무엇일까. 금호여관의 태동과 그 안에 담긴 예술적·현실적 담론을 아래 인터뷰 전문에서 만나보자.
INTERVIEW

| 첫 매체 인터뷰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즈매거진> 독자분들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금호여관 설립자 이정입니다. 금호여관은 금호동의 오프라인 공간 ‘WALT 금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예술 집단이자 팀이에요. 공간을 찾아주시는 분들과 직접 교류하기도 하고, 팀원들끼리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면서 하나의 커뮤니티처럼 운영되고 있습니다.
| ‘WALT’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사실 특별한 의미를 담아 만든 이름은 아니에요. 예전에 잠깐 독일어를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세계를 뜻하는 ‘Welt(벨트)’와 숲을 의미하는 ‘Wald(발트)’의 어감이 유독 좋게 남아 있었거든요. 아마 그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지금의 ‘WALT’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 여관을 개조해 만든 창작자들의 공간이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금호여관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월세 부담 때문에 작업을 포기하려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작업을 지속할 시간을 벌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이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각자 자신의 작업에 대한 확신을 얻는 계기가 되길 바랐고요. 공간이 넓지 않은 만큼 마음이 맞는 동료들을 모으는 데 더 집중하고 있어요. 대신 작업의 스펙트럼은 최대한 다양하게 가져가려 합니다. 회화부터 디자인, 염색, 플라워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작업자들이 한데 모이면 분명 새로운 시너지가 생기거든요. 나아가 하나의 예술 집단으로서 대규모 설치 미술 같은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결국 이런 협업 구조가 멤버들의 경제적 자립으로 이어지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 그게 금호여관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 2022년부터 존재해왔지만, 2025년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문을 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미술이라는 틀 안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면, 2025년은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금호여관의 방향성을 다시 설정해 나간 시기였어요. 꽃을 다루는 친구, 염색에 집중하는 친구, 그림을 그리는 친구처럼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때 비로소 세상과 연결되는 문을 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현재 몇 명의 창작자와 함께하고 계신지, 함께하는 분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총 6명의 구성원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데요. 먼저 목재와 철물을 가공하고 조합해, 빛을 다루는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이현제 작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브랜드 진 리(jin lee)를 전개하는 이명진 디자이너가 있어요. 개인과 세계가 맺는 관계와 구조를 사회학적 시선으로 관찰하고, 이를 의복의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죠.
박인 작가는 삶의 불가해한 감각을 이미지로 은유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이불 작가의 어시스턴트로 활동하며 자신의 작업 세계 역시 묵묵히 확장해 나가고 있고요. 또 박규민 작가는 패션 브랜드 마비 카르가(mavi karga)를 운영하며 국내 여성복 브랜드의 리브랜딩 작업에 참여해 왔고, 현재는 사진 기반의 시각 커뮤니케이션 스튜디오에서 활동 중입니다.
이외에도 서울과 나주를 오가며 자연 재료를 활용한 전통 염색 기법으로 색을 쌓고 원단을 잇는 공예 작업을 이어가는 윤의성 작가, 자연의 유연한 결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풀어내는 플라워 아티스트이자 브랜드 레베니오메이커(r e v é n ĭ o m a k e r)의 플라워 디렉팅을 맡고 있는 임선영 작가가 함께하고 있어요.
그리고 공식 멤버는 아니지만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는 필렛 라이너스도 소개하고 싶은데요. 디자이너 빈티지와 아방가르드 브랜드, 유럽의 작업복을 주로 다루며 럭셔리 하우스와 낡은 워크웨어 사이에서 발견한 특유의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금호여관은 어떤 기준으로 함께할 창작자들을 찾고 있나요?
세련됨이나 예술성 같은 감각은 결국 취향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누구나 SNS를 통해 높은 안목을 가질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성실함입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유학파 아티스트보다도 생활의 달인 같은 작업자에게서 더 큰 가능성을 봐요. 아무리 감각이 뛰어나더라도 매일 긴 시간을 버텨가며 작업을 지속하지 못하면 결국 자기만의 기술은 나오지 않거든요. 눈만 높고 손이 따라주지 않는 작업은 결국 누군가를 흉내 내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수없이 실패하면서도 꾸준히 자기 작업을 밀어붙이는 사람은 결국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냅니다. 누구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은 그런 반복과 시간 끝에서 나오죠.

| 금호여관 한편에는 메모를 남길 수 있는 게시판도 있더라고요. 이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3층에 있는 게시판은 방명록처럼 자유롭게 메모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이에요. 명함부터 작업물의 작은 조각, 기획 중인 이벤트, 협업 요청이나 자기소개처럼 어떤 형식이든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죠. 이렇게 외부로 확장되는 커뮤니티를 천천히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창작자들을 초대해 서로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고, 우리가 가진 에너지가 밖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새로운 영향력으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하고 있어요.
| 방문자 게시판 속 메모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전북 익산에서 올라오신 한 방문자분이 기억에 남아요. 현실적인 직업으로 생업을 이어가고 계셨지만, 마음 한편에는 창작에 대한 갈증이 굉장히 큰 분이었거든요. 금호여관을 천천히 둘러보신 뒤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 모습이 오래 남았습니다. 저는 결국 사람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열망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들이 서로 맞닿을 때 일종의 상호작용처럼 에너지가 오가게 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앞으로 금호여관이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또 어떤 에너지를 만들어가게 될지 저 역시 기대가 큽니다.

| 꿈을 좇는 젊은 창작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끈기와 열정은 어떤 분야에서든 결국 가장 기본이 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함께하는 친구들에게 종종 조금 냉정한 이야기도 해요.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을 거야. 그래도 지금 행복하잖아.”라고요. 정답이 없는 예술의 세계에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작업을 이어갈 이유는 충분하다고 믿어요.
다만 제 바람은 그 행복이 단순한 순간의 즐거움으로 끝나지 않는 거예요. 결국 창작이 현실적인 자립으로 이어져 오래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창작에만 몰두하느라 경제적인 감각이 부족한 친구들에게도 작업의 진척이나 판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곤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그 행복 역시 삶 안에서 지속 가능해야 하니까요.
| 앞으로의 금호여관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나요?
저희는 지금 단단한 팀이 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무가 되기 위해 저마다 심어둔 씨앗을 키워내고 있는 셈이죠. 이제는 각자가 밖으로 나가 자신의 실력을 조금씩 증명해가기 시작한 시점에 와 있다고 느끼고요. 금호여관은 단순히 하나의 오프라인 공간으로 머물고 싶지 않아요. 실력 있는 창작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또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하나의 흐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 끝으로, 이 인터뷰를 읽는 독자들은 금호여관을 어떤 공간으로 생각하고 방문하면 좋을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공산품처럼 정형화된 물건보다는 작가의 정신과 이야기가 깃든 물건을 더 애호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금호여관에 오셨을 때도 저희가 정성껏 채워놓은 작업물들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천천히 바라보며 작은 즐거움과 영감을 얻어가셨으면 합니다. 무언가를 소비하러 오는 공간이라기보다, 다양한 창작자들의 세계를 편하게 둘러보고 서로의 에너지를 나누러 온다는 마음으로요.
By eyesmag supporters 권혁주, 박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