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브레이크인가,
과도한 표현 통제인가.
*기사 내 이미지는 AI로 제작됐습니다.

화면 밖의 그늘

‘먹방’은 2000년대 후반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출발해 혼밥 트렌드와 맞물리며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언어 장벽 없이 소비될 수 있다는 특성 덕에 해외로도 번졌고, 2021년에는 ‘먹방(MUKBANG)’이라는 단어가 영어권에서 그대로 통용되며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됐다. 2024년 한 해 동안 제목에 ‘먹방’이 들어간 영상의 조회수는 300억 회를 넘어섰고, 전 세계 구독자 1,000만 명을 넘긴 국내 크리에이터도 10명이 넘는다.

'mukbang' 또는 '먹방'이 포함된 유튜브 영상 수 2024 260만 개+ 2021 180만 개+ 2018 64만 개+ 2015 15만 개+

성장의 이면엔 그늘도 짙었다. 조회 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먹는 양은 점점 불어났고, 물리적으로 소화하기 힘든 양을 카메라 앞에서 삼켰다가 몰래 뱉어내는 이른바 ‘먹뱉’ 행위가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협찬 사실을 감춘 이른바 ‘뒷광고’ 논란도 이 업계를 여러 차례 흔들었다. 조회 수와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는 과정에서 드러난 부작용들이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죽음으로 이어졌다. 2024년 중국의 한 먹방 스트리머는 생방송 도중 급성 위 파열로 사망했다. 10시간 넘게 이어진 방송에서 10kg 넘는 음식을 먹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화제성 중심으로 흘러가던 먹방을 향한 시선은 어느새 건강과 안전 쪽으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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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빼든 유튜브

유튜브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폭식과 섭식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광고 수익 창출 규제를 강화했다. 규제의 핵심은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닌, 콘텐츠가 시청자에게 미칠 모방 위험성. 섭식장애를 직접 종용하지 않았더라도 폭식이나 극단적인 식사 제한 행동을 담고 있다면 광고 수익 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유튜브의 판단 방식이다. 가이드라인은 폭식 행동뿐만 아니라, 체중 감량 상황의 반복적 확인이나 최저 BMI 공개 같은 극단적 식이 제한 신호까지 ‘섭식장애 유도·모방 위험’이라는 하나의 규정 아래 묶어 판단한다. 먹방과 다이어트 콘텐츠가 같은 정책 선상에서 제재 대상으로 연결되는 이유다. 영상 속 주요 장면은 물론 제목, 썸네일, 설명, 태그를 아우른 콘텐츠 전체의 맥락이 함께 검토된다.

이 기준이 적용되면서 실제 제재를 받은 국내 채널들이 등장했다. 구독자 44만 명대의 한 유튜버는 채널 커뮤니티를 통해 수익 창출 중단 사실을 알렸다. 다이어트 과정과 먹방을 함께 다뤄온 구독자 10만 명대의 또 다른 유튜버는 가이드라인 위반 통보를 받은 뒤 지난 4년간 올린 영상 667개 중 339개를 스스로 삭제했다. 신규 영상뿐 아니라 과거 영상까지 전수 조사 대상에 포함되는 소급 적용의 여파로 업계 전반의 긴장감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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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아니다

미디어가 부추기는 폭식과 섭식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18년 보건복지부는 비만 관리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폭식 조장 미디어·광고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당시 국가가 개개인의 먹는 방송까지 과도하게 관여하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고, ‘먹방 금지’ 논란으로 번졌다. 정부는 비구속적 권고에 불과하다고 해명했으나 해당 추진안은 동력을 잃고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2018 보건복지부 비만 관리 종합대책 2026 유튜브 광고 수익 창출 규제

과거 정부 차원의 시도가 반발에 부딪쳐 무산됐다면, 이번에는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가 정책 주체로 나섰다. 정부의 행정적 규제와 사기업 플랫폼의 자사 서비스 정책이라는 형식적 차이는 존재한다. 다만 거대한 파급력을 지닌 미디어가 이용자의 식습관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수년 전부터 반복되어 온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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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선을 둘러싼 혼란

문제는 유해성과 일상적 콘텐츠를 가르는 기준선의 모호함. 유튜브 가이드라인은 최저 BMI 공개나 체중 감량 수치 반복 확인, 폭식 및 음식 은닉 등을 위험 신호로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어디서부터를 ‘폭식’으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 정량 기준은 제시하지 않는다. 대식과 폭식의 경계가 불분명한 탓에, 제작자 입장에서는 어떤 요소가 수익 창출 제한의 걸림돌이 될지 미리 예측하기 어렵다.

플랫폼 알고리즘의 유해 콘텐츠 선별 한계 역시 지적된다. 디지털혐오대응센터(CCDH)의 조사에 따르면, 섭식장애 관련 영상을 시청한 계정에 유해 콘텐츠가 자동 추천되는 비율은 2024년 3개 중 1개꼴에서 2026년 9개 중 1개꼴로 개선되었으나 필터링의 허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처럼 알고리즘과 모니터링 체계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호한 기준을 일률 적용하다 보니, 유해성이 적은 오락용 브이로그나 다이어트 기록물까지 제재 위험에 노출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정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진행되는 전수 조사 방식이 제작 생태계 전체에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사 내 이미지는 AI로 제작됐습니다.

매일 밤 대리만족했는데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규제를 향한 시선은 엇갈린다. 모든 이용자가 먹방을 섭식장애를 유도하는 유해 콘텐츠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체중 관리나 소식으로 인해 자유롭게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에게 먹방은 욕구를 간접적으로 해소해 주는 심리적 해방구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수백 개의 영상이 삭제되는 과정을 지켜본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매일 밤 대리만족을 느끼던 영상들이 사라져 아쉽다”는 반론이 이어졌다. 개인의 영상 시청과 식습관 선택을 플랫폼이 직접 통제하려 한다는 불만도 존재한다. 무분별한 폭식 경계라는 취지에는 공감하더라도, 시청자의 자율적 판단권을 경시한 일률적 수익 제한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화면 안의 도파민과 화면 밖의 건강. 이제 먹방은 자율과 규제의 시험대에 섰다.

조회수 경쟁에 파묻혀 자극적인 연출을 거듭하던 먹방 시장에 경종을 울릴 계기는 필요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양을 먹어 치우거나 건강을 위협하는 식습관을 노출하는 방식은 미성년자를 비롯한 이용자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여지가 컸다. 플랫폼 역시 섭식장애 및 폭식 유발 방지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플랫폼의 자율적 통제가 건강한 미디어 환경을 만드는 유일한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정교하지 못한 기준과 자의적인 적용은 창작자의 표현 영역을 위축시키고 시청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위험을 동반한다. 위험 콘텐츠 차단이라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면서 창작 생태계를 지키려면, 획일적인 제재에 머물지 않고 대식과 폭식을 가르는 세밀한 가이드라인과 정교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