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섹스 사이를 읽는 책 추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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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섹스는 흔히 한 쌍으로 불린다. 하지만 누구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지금도,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관계는 여전히 드물다. 몸이 먼저 가까워지기도 하고 마음만 남아 오래 서성이기도 한다. 문학은 오래전부터 이 어긋남을 집요하게 들여다봤다. 사랑 없는 섹스 그리고 섹스 없는 사랑. 해가 짧아지고 혼자 보내는 밤이 길어지는 가을, 그 간극을 정면으로 다룬 책 여섯 권을 골랐다.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가 1991년 발표한 작품이다. 화자인 ‘나’는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 A와 사랑에 빠진 뒤,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에르노는 이 감정이 사랑인지 집착인지 판단하지 않는다. 욕망이 한 사람의 일상을 어떻게 잠식해 가는지 꾸밈없이 기록할 뿐이다. 감정을 포장하지 않기에, 이 짧은 책은 어떤 연애소설보다 솔직하게 읽힌다.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며 휴대폰 화면만 바라본 적이 있었다면, 앉은자리에서 마지막 장까지 넘기게 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민음사
1968년 ‘프라하의 봄’ 전후의 체코를 배경으로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다. 외과의사 ‘토마시’는 ‘테레자’와 함께 살면서도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를 끊지 못한다. 그는 이런 관계를 에로틱한 우정이라 부르며, 섹스와 사랑은 별개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은 ‘테레자’의 질투와 괴로움 앞에서 조금씩 흔들린다. 여기에 ‘토마시’의 또 다른 연인인 화가 ‘사비나’, 그리고 ‘사비나’를 사랑하게 되는 학자 ‘프란츠’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쿤데라가 이들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가볍게 사는 것과 무겁게 사는 것, 어느 쪽이 옳은가. 삶이 단 한 번뿐이라 그 답을 비교해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소설 내내 긴장을 만든다. 1988년 필립 카우프만(Philip Kaufman) 감독이 영화로 옮겼고, 국내에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몸과 마음을 따로 떼어 둘 수 있다고 믿어 본 적이 있다면 가장 먼저 펼쳐 볼 만하다.
<노멀 피플>
샐리 루니, 아르테
아일랜드 작가 샐리 루니(Sally Rooney)가 2018년 발표한 두 번째 장편으로, 그해 부커상 롱리스트에 올랐다. 아일랜드 작은 마을의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코넬’과 ‘메리앤’.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코넬’과 늘 혼자인 ‘메리앤’은 교실에서 서로 모르는 척한다. 하지만 ‘코넬’의 어머니가 ‘메리앤’의 집에서 청소 일을 하면서 둘은 가까워지고, 곧 아무도 모르는 관계를 시작한다. 친구들의 시선이 두려웠던 ‘코넬’은 이 관계를 숨긴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진학한 뒤에도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이 소설에서 섹스는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방법이면서, 정작 해야 할 말을 미루게 만드는 도피처이기도 하다. 계층의 차이, 그리고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메리앤’의 마음이 둘 사이를 계속 벌려 놓는다. 2020년에는 폴 메스칼(Paul Mescal), 데이지 에드거 존스(Daisy Edgar-Jones) 주연의 드라마 <노멀 피플>로 제작됐다. 몸은 가까운데 말은 늘 한발 늦었던 관계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유독 아프게 읽힐 소설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민음사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이 1959년, 스물넷의 나이에 발표한 네 번째 소설이다. 서른아홉의 실내장식가 ‘폴’에게는 오랜 연인 ‘로제’가 있다. 하지만 구속을 싫어하는 ‘로제’는 마음 내킬 때만 ‘폴’을 찾고, 다른 여자와의 하룻밤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폴’은 일을 의뢰한 부인의 집에서 열네 살 어린 변호사 ‘시몽’을 만난다. 제목은 ‘시몽’이 ‘폴’을 음악회에 초대하며 보낸 편지 속 질문에서 따왔다. 그 질문 앞에서 ‘폴’은 자신이 정말 ‘브람스’를 좋아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몸이 자유로운 ‘로제’와 사랑에 전부를 거는 ‘시몽’ 사이에서, ‘폴’의 마음은 어느 쪽에도 온전히 머물지 못한다. ‘시몽’은 그런 ‘폴’에게 사랑이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둔 죄를 묻고, 사형 대신 고독 형을 선고한다. 익숙한 관계와 새로운 설렘 사이에서 망설여 본 적이 있다면, ‘폴’의 선택이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창비
박상영이 2019년 펴낸 연작소설이다. <재희>,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네 편이 실렸고, 30대 초반의 게이 작가 ‘영’이 네 이야기를 잇는다. 첫 편에서 ‘영’은 대학 동기 ‘재희’와 한집에 살며 서로의 연애와 비밀을 나눈다. 두 번째 편은 투병 중인 엄마와 연상의 애인 사이에서 흔들리는 ‘영’의 모습을 그린다. 표제작에서 ‘영’은 바텐더 ‘규호’에게 자신의 HIV 감염 사실을 털어놓고, ‘규호’가 그런 ‘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의 연애가 시작된다. 마지막 편은 홀로 방콕을 찾은 ‘영’이 ‘규호’와의 시간을 되짚는 이야기다.
하룻밤으로 끝나는 관계와 오래 곁에 남는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 소설은 그 차이가 몸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유머와 슬픔을 오가며 보여 준다. 안톤 허(Anton Hur)가 옮긴 영어판은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롱리스트에 올랐다. 2024년에는 <재희>를 원작으로 한 김고은, 노상현 주연의 영화와 남윤수 주연의 티빙 드라마가 잇따라 공개됐다.
<에로티즘>
조르주 바타유, 민음사

프랑스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가 1957년 펴낸 책이다. 앞선 다섯 권의 소설이 던진 질문을 이론의 언어로 풀어낸다. 바타유는 서문 첫머리에서 에로티즘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을 긍정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그에게 에로티즘은 단순한 성행위가 아니라 동물의 성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행위다. 핵심 개념은 금기와 위반이다. 인간은 노동과 이성으로 질서를 세우며 금기를 만들고 바로 그 금기를 넘어서는 순간 에로티즘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바타유는 또 인간이 서로 단절된 불연속적 존재이기에 타인과 하나가 되는 순간을 통해 잠시나마 연속성을 꿈꾼다고 설명한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다만 토마시의 가벼움, 에르노의 기다림, 폴의 망설임이 왜 그토록 사람을 흔드는지 궁금해졌다면, 이 책이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답을 건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