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Comment

사이코패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우리는 그들을 사회의 경계선 밖으로 밀어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정작 그 선 밖의 존재들이 스크린 안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은 더 가까이 보려 한다. 최근 공개된 <내가 만난 사이코패스> 역시 방영 직후 국내 넷플릭스 예능 부문 1위에 올랐다. 미디어가 악인을 주인공으로 세울수록 대중은 그 서사에 더 깊이 몰입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불쾌하고 위험한 인물에게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일까.

<THOR: THE DARK WORLD> MARVEL STUDIOS

선악 구도가 무너진 자리

과거 대중문화의 축은 명확한 선과 악의 대결이었다. <슈퍼맨>은 악을 무찌르고, <스타워즈>는 빛과 어둠으로 나뉘었다. <해리 포터> 역시 절대악에 맞서는 선의 연대를 다뤘다. 선한 영웅이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승리하는 구도는 대중에게 안전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판도는 다르다. 선이 악을 이기는 결과보다 ‘악인은 왜 그 지경이 되었는가’를 파고드는 서사가 시장을 지배한다. 마블(Marvel)조차 단순한 빌런이었던 ‘로키’를 자신의 죄를 자각하며 성장하는 입체적 인물로 재창조했다.

여기에 실제 사건을 다루는 트루 크라임(True Crime) 장르가 폭발적인 화력을 보탰다. 넷플릭스(Netflix)의 <다머 – 괴물: 제프리 다머 이야기>는 공개 두 달 만에 전 세계 누적 시청 10억 시간을 넘겼다. 기피 대상이었던 악인의 서사가 이제는 글로벌 플랫폼의 수익과 화제성을 좌우하는 핵심 콘텐츠가 된 것이다.

<SPIDER MAN: HOMECOMING> MARVEL STUDIOS

선인에게서 배우고, 악인에게 시간을 쓴다

이 흐름은 체감이 아니라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보스턴 칼리지의 조던 와일리(Jordan Wylie)와 브루클린 칼리지의 아나 갠트먼(Ana Gantman) 연구팀이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 넷플릭스 TOP 10 콘텐츠 133편 중 성인 대상 인기작의 59%는 주인공이 비도덕적 인물이었다. 장르나 러닝타임 같은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주인공이 부도덕할수록 작품을 더 오래 시청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참가자들은 선한 주인공을 보며 “더 많은 배움을 얻었다”고 답했다. 우리는 선인에게서 당위를 말하지만, 정작 시간은 악인에게 쓰고 있는 셈이다.

미국 10대들 가운데 ‘스파이더맨’을 싫어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영웅을 닮고 싶고 좋아하니까 돈과 시간을 들여 극장을 찾는다. 이건 애정에 기반한 소비다. 좋아하는 대상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지 작동 방식이다. 반면 사이코패스 콘텐츠를 시청하는 이들에게 그 인물이 좋아서 보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손사래를 칠 것이다. 우리는 악인을 동경하거나 닮고 싶어서, 혹은 그들의 범죄에 동조해서 이야기를 소비하지 않는다. 좋아해서 곁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거리를 두고 구경할 뿐.

<JOKER> DC FILMS

사이코패스 탐닉의 심리학

그 이유를 풀기 위해서는 인간 심리의 미세한 결을 살필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이해되지 않는 대상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심리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왜 저렇게 행동했을까’를 추측하며 마음의 지도를 그린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라 부른다. 보통은 이 지도가 쉽게 완성된다. ‘배고파서 화를 냈겠지’, ‘상처받아서 그랬겠지’처럼 상대의 행동을 예측 가능한 서사 안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이 지도 자체를 그릴 수 없게 만든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그들의 특성은 보편적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는 자꾸만 눈이 가고 마음에 오래 남는다.

두 번째는 행동과학자 콜튼 스크리브너(Coltan Scrivner)가 제시한 ‘병적 호기심(Morbid Curiosity)’이다. 병적 호기심이란 위험하거나 불쾌하며 위협적인 상황을 관찰하고 탐구하려는 인간의 심리적 욕구를 의미한다.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에 들어가거나 피가 튀기는 공포영화를 돈 내고 보는 심리가 대표적이다. 비명이 터지고 심장이 뛰면서도 굳이 그 공포를 찾아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안전함이 확보된 위험’을 소비하며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험난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전시켜 온 진화론적 본능과 직접 연결된다. 뇌는 실제 위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공포 자극을 접할 때, 신체적 흥분과 함께 안도감과 도파민을 분출한다. 즉, 직접 당하면 치명적인 위험(악인, 범죄, 공포)을 스크린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가상으로 체험해 봄으로써, 불확실한 위험에 대비하고 불안을 스스로 다스리는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셈이다.

규범을 깨부수는 대리 해방감도 있다. 회사에서, 관계에서, 크고 작은 사회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매일 규칙과 절차를 지키며 산다. 부당하다고 느껴도 대부분은 참고 넘긴다. 그런데 스크린 속 악인들은 바로 그 규칙과 질서를 가차 없이 깨부순다. 2019년 개봉해 R등급 영화 최초로 글로벌 박스오피스 10억 달러를 돌파한 <조커>는 이를 완벽하게 증명한다. 관객들이 열광한 것은 살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에서 완전히 소외된 ‘아서 플렉’이 모든 규범을 벗어던지고 무질서의 상징인 ‘조커’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내가 얽매여 있는 질서를 대신 부숴주는 존재를 바라보며 느끼는 묘한 해방감. 그것이 세 번째 이유다.

<DAHMER - MONSTER: THE JEFFREY DAHMER STORY> NETFLIX

‘악인 서사’라는 흥행보증수표

대중의 이러한 복합적 심리를 콘텐츠 산업이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미디어는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과 대리 해방감을 정확하게 긁어주는 악인 주인공 콘텐츠를 끊임없이 기획하고 생산해 낸다. 사이코패스 킬러와 그녀에게 기묘하게 매료되는 요원의 관계를 그려 글로벌 히트를 친 <킬링 이브>부터 살인마의 심리를 해부한 <마인드헌터>, 사이코패스적 집착을 주인공 시선에서 다룬 <너의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악인을 전면에 내세운 라인업을 쉴 새 없이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시장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며 막대한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진다. 엔솔로지 시리즈 <괴물>이 대표적이다. 첫 번째 시즌이었던 연쇄살인범 제프리 다머(Jeffrey Dahmer) 이야기가 공개되었을 때 실제 피해자 유가족들은 사전 동의 없는 상업적 소비라며 거세게 반발했고 언론 역시 거센 윤리적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을까. 도덕적 논란 속에서도 시청률은 폭발했고, 넷플릭스는 보란 듯이 곧바로 다음 시즌들의 제작을 확정 지었다. 윤리적 비판조차 대중의 탐색 본능을 자극하는 강력한 화제성의 연료가 된다는 점을, 그리고 악인의 서사가 최고의 수익을 보장하는 보증수표라는 점을 콘텐츠 산업은 데이터를 통해 이미 완벽하게 학습한 것이다.

<KILLING EVE> BBC AMERICA

주도권을 되찾는 시선

결국 우리가 사이코패스와 악인의 서사에 빠져드는 현상은 일시적 트렌드나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 아니다. 미지에 대한 인지적 욕구, 위험에 대비하려는 진화적 안전 본능, 답답한 현실 질서에서 느끼는 대리 해방감이라는 인간 본연의 심리가 작동한 결과다. 그리고 이 오래된 본능 위에, 대중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내고 상품화하는 거대한 스트리밍 산업의 자본과 기획이 결합해 만들어낸 구조적 현상이다.

그러므로 자극적인 악인의 서사 앞에서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더라도, 스스로의 도덕성을 의심하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정상적인 인지 기제와 정교한 미디어 시스템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이다. 이 메커니즘을 명확히 이해한다면 우리는 미디어가 던지는 자극에 무작정 휘둘리지 않고 화면 속 이야기를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