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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물가 힘드시죠. 여기는 달라, 홈플러스. 착한 가격으로 행복을 더한다던 홈플러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걸까.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홈플러스가 극적으로 회생의 물꼬를 텄다. 67개 점포 재개, 체질 개선 청사진까지 내놓은 홈플러스는 지금 부활을 꿈꾼다.

홈플러스 영업적자액

무너지기까지 11년

홈플러스의 뿌리는 삼성그룹 유통 부문이다. 1997년 대구 1호점을 시작으로, 1999년 영국 유통기업 테스코(TESCO)와 합작법인을 세웠다. 이후 공격적인 출점과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렸고, 2008년 이랜드 홈에버 매장 33개를 인수하며 이마트와 롯데마트와 경쟁하는 업계 강자로 우뚝 섰다. 2013년 연결 기준 매출은 9조 원에 육박했고, 영업이익 3,382억 원을 기록하며 명실상부 업계 2위였다. 당시만 해도 백화점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문화센터를 대형마트에 도입한 파격은 ‘한국형 할인점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환점은 2015년이었다. 경영 악화로 현금이 절실했던 테스코는 해외 알짜 자산인 홈플러스를 매물로 내놓았다. 매각 직전 매출 8조 5,682억 원, 영업이익 7,000억~8,000억 원에 달할 만큼 현금창출력이 압도적이었고, 핵심 상권 매장의 부동산 가치만도 수조 원에 이르렀다. 2015년 최종 입찰에서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이하 MBK)는 7조 2,000억 원을 써 국내 M&A 사상 최대 금액으로 홈플러스를 낙찰받았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후 홈플러스의 실적은 내리막을 걸었다. 영업이익은 2021년 1,335억 원 적자로 전환된 뒤 2022년 2,601억 원, 2023년 1,994억 원, 2024년 3,142억 원, 2025년 5,463억 원으로 불어났다. 142개까지 늘었던 매장은 67개로 줄었고, 2만 명을 넘었던 직원 수는 1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2026년 7월 3일,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MBK 5단계 지배구조

빚으로 기업을 사는 법

MBK의 홈플러스 인수는 전형적인 차입매수(LBO·Leveraged Buyout) 방식이었다. 인수 기업의 자산이나 미래 현금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기업을 사는 구조다. 자기 돈은 최소화하고, 인수한 기업이 그 빚을 갚게 한다.

7조 2,000억 원 인수 금액 중 자본으로 투입한 건 2조 2,000억~2조 5,000억 원, 전체의 30%에 불과했다. 나머지 60~70%는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로 빌린 돈이었다. MBK는 법적 책임을 분산하고 대출 한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중간에 특수목적법인(SPC·Special Purpose Company) 3개를 세워 ‘MBK파트너스 → 한국리테일투자 → 홈플러스홀딩스 → 홈플러스스토어즈 → 홈플러스’로 이어지는 5단계 지배구조를 짰다. 경영이 악화돼도 채권자는 중간 SPC의 지분이나 홈플러스 자산만 압류할 수 있을 뿐, MBK 본사에는 손을 댈 수 없는 구조.

문제는 이 막대한 빚의 무게를 홈플러스가 고스란히 떠안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현장에서 영업이익을 짜내도 그 돈은 인수금융 이자와 임차료를 갚는 데 먼저 소진됐다. 온라인 전환에 사활을 걸어야 했던 시기, 물류 인프라 구축에 투입돼야 할 자금의 원천이 애초에 고갈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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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팔아치운 것들

빚을 갚기 위해 MBK가 선택한 방법은 홈플러스의 자산을 파는 것이었다. 점포 건물을 매각하고 다시 임차료를 내며 영업하는 ‘매각 후 재임차(Sale & Leaseback)’ 방식이었다. 2015년부터 10년간 처분한 유형자산 규모만 3조 4,506억 원에 달한다. 인수 직후인 2016~2017년 1년 동안만 5,684억 원어치 토지와 건물이 팔려나갔다.

당장 현금은 생겼다. 10년간 4조 원 규모의 자산을 이 방식으로 매각했다. 그러나 점포를 팔고 나니 이번엔 매달 임차료가 고정비로 쌓이기 시작했다. 홈플러스의 리스부채 상환을 위한 현금 유출은 2020~2021년 2,189억 원에서 2025~2026년 4,080억 원으로 약 두 배 증가했다. 매각으로 빚은 줄었지만, 임차료라는 새로운 짐이 그 자리를 채웠다.

설상가상으로 2019년 리츠 상장도 실패했다. 홈플러스는 전국 매장 51개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리츠를 코스피에 상장시켜 남은 채무를 청산하려 했지만, 정부 규제로 대형마트 업황이 악화되며 흥행에 실패했다. 이후 자산 유동화는 더욱 공격적으로 진행됐다. 코로나19가 덮쳤고, 이커머스라는 파도가 밀려왔다. 홈플러스에는 그것을 막아낼 재정적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점포 리뉴얼도, 신선식품 투자도, 온라인 물류 인프라 구축도 모두 뒷전이었다. 경쟁사들이 체질을 바꾸는 동안 홈플러스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

주요 유통업체 매출 비중 (2026.03) / 대형마트 3사(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매출 비중

쿠팡은 되고 홈플러스는 안 된 이유

MBK의 경영 실패가 홈플러스를 옥죄는 동안, 시장은 또 다른 방향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LBO라는 내부적 원인에 더해 이커머스의 폭발적 성장과 기울어진 유통 규제라는 외부적 악재가 겹친 것. 대형마트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기준, 2026년 3월 온라인 유통 비중은 60.6%인 반면 대형마트는 8.1%에 불과했다. 2019년 20.2%에 달했던 대형마트 점유율이 7년 만에 절반 아래로 쪼그라든 것이다. 대형마트 매출은 2024년 2분기 이후 8분기 연속 감소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규제다.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는 월 2회 의무휴업,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 금지 규제를 받는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이 규제는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대형마트가 서울 시내 핵심 입지에 점포를 두고도 새벽배송을 할 수 없는 사이,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국민 일상을 파고들었다. 14년 전 시장 환경을 기준으로 만든 규제가 이커머스라는 유통 공룡을 탄생시킨 셈이다. 홈플러스 이탈 고객의 상당수는 이마트나 롯데마트가 아니라 쿠팡과 편의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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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도 돈 버는 구조

홈플러스가 파산 위기에 처하는 동안 MBK는 얼마나 벌었을까. 메리츠금융그룹은 MBK의 홈플러스 투자펀드인 3호 펀드 투자수익이 1조 원 이상이며, 별도로 보수(관리보수+성과보수) 약 1조 2,300억 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MBK는 이에 반박하고 있지만, 기업 건전성이 악화되는 동안에도 운용사는 수수료 수익을 챙기고 그 위험은 투자자와 채권자,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1만 2,000여 명 근로자의 일자리가 흔들리고, 4,100억 원대 물품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업체들이 연쇄 도산 위기에 처한 것과 대조적이다. MBK 경영진은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하락을 예측하고도 전자단기사채 1,164억 원을 발행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그 피해 역시 일반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홈플러스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MBK는 같은 방식으로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NEPA)를 2013년 인수했다. 홈플러스와 마찬가지로 LBO 방식에 인수를 위한 SPC 부채를 네파에 떠안겼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네파가 부담한 금융비용만 3,157억 원이다. 11년 중 흑자를 기록한 건 단 2년뿐이었다. BHC, 모던하우스, 골프존카운티 등 MBK가 인수한 다른 기업들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구조가 반복될 수 있었던 건 제도적 공백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은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할 때 빌릴 수 있는 돈의 한도를 법으로 제한한다. 기업이 벌어들이는 돈으로 갚을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빚을 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런 규제가 없다. 2015년 홈플러스 인수 당시 이 기준을 적용했다면 경고등이 켜졌을 수준이었지만, 제도적 장치는 단 한 번도 작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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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가장 아래쪽부터

홈플러스 직원 다수는 출범 초기부터 수십 년을 이 매장에서 일해온 이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가장들. 몇 달째 임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자 퇴직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스스로 회사를 떠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구조조정도 감수하겠다는 직원들은 물론 월급을 반납해서라도 회사를 살리고 싶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 절박함은 MBK와 메리츠금융그룹의 책임 공방 속에서 끝내 닿지 않았다.

입점 점주들도 한계에 몰렸다. 회생절차 이후 정상 영업을 해야 보상에 유리하다는 말을 믿고 적자를 감수하며 버텨온 이들이 폐업을 준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홈플러스와 거래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150곳의 미정산 납품대금은 업체당 평균 7억 7,400만 원에 달한다. 직원은 임금을 걱정하고, 점주는 적자를 버티고, 협력업체는 납품대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 책임 공방이 길어지는 동안 피해는 현실이 되고 있다.

홈플러스 67개 핵심 점포 권역별 분포

홈플러스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던 홈플러스는 2,000억 원 긴급운영자금(DIP Financing) 수혈이 확정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MBK와 최대 채권자 메리츠금융그룹이 극적으로 합의한 결과다. 핵심 쟁점이었던 김병주 MBK 회장의 전액 연대보증이 결정되면서 메리츠금융그룹도 대출을 의결했다. 서울회생법원은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취소하고,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을 연장했다.

홈플러스는 7월 22일 입장문을 내고 향후 청사진을 공개했다. 지난 13일부터 임시 휴업 중인 67개 핵심 점포 전체를 다시 열겠다는 방침이다. 온라인 부문은 즉시 영업이 가능한 수도권 16개 점포부터 재개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폐점을 확정한 37개 점포는 최종 문을 닫는다. 홈플러스는 매출이 크고 회전율이 높은 생필품부터 확보해 현금흐름을 개선하고, 회생신청 직전 대비 각종 비용을 1조 2,000억 원 줄인 67개 핵심 점포는 납품과 영업만 정상화되면 800억 원대 영업이익 실현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식품 전문 슈퍼마켓 트레이더조(Trader Joe’s)를 모델로 체질 개선에 나선다. 현재의 복층 대형 매장 대신 1,000평 규모 단층 매장에 식품, 자체 브랜드(PB) 상품, 생필품을 집중 배치하는 방식이다.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규제 완화가 현실화되면 체질 개선과 맞물려 반전의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제는 여전히 무겁다. 2,000억 원 자금 대부분은 밀린 임차료, 전기세, 납품대금 정산 등에 먼저 쓰일 전망이다. 협력업체당 평균 7억 7,400만 원의 미정산 대금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납품 정상화도 쉽지 않다. 회생계획안 가결 시한은 9월 4일. 홈플러스는 진짜 부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