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만의 재방한, 삼쏘 회동에 담긴 젠슨 황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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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맥 회동에서 삼쏘 회동으로. 엔비디아(NVIDIA)의 CEO 젠슨 황(Jensen Huang)이 약 7개월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다. 현재 세계 테크 업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1년도 안 돼 한국을 두 번 찾는 건 이례적이다. 지난 방문과 달라진 건 비단 술자리 안주만이 아닐 터. 작년엔 GPU를 원하는 한국이 그를 불렀다면, 이번엔 엔비디아가 한국을 필요로 한다. 과연 무엇이 바뀌었고, 각자 무엇을 원하는 걸까.

절대 갑에서 파트너로
작년 10월 젠슨 황의 방한 목적은 명확했다. AI 가속기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의 GPU를 한 장이라도 더 받으려는 한국 기업들의 구애였고, 젠슨 황은 ‘절대 갑’의 위치에서 한국을 찾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자사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엔비디아에 납품하려 뛰었으며, 현대차는 자율주행에 필요한 GPU 확보에 공을 들였다. 젠슨 황은 귀국길에 “한국에 GPU 26만 장을 공급하겠다”는 선물을 남겼다.
그러나 이번 방한은 결이 조금 다르다. 업계에서는 작년과 같은 AI 업계 황제로서의 행차가 아니라, 제조 노하우와 데이터를 공유할 한국의 파트너 기업을 간택하러 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의제도 GPU 공급에서 로봇·자율주행·소버린 AI를 아우르는 피지컬 AI로 확장됐다. 만나는 사람도 달라졌다. 작년에는 이재용·정의선 회장과의 회동이 핵심이었다면, 이번에는 구광모 LG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택진 엔씨 대표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엔비디아가 원하는 파트너의 성격 자체가 바뀐 것이다.

엔비디아가 한국에서 원하는 것
젠슨 황이 꾸준히 강조해온 ‘피지컬 AI’는 현실 세계를 가상으로 복제하는 디지털 트윈, 휴머노이드 로봇 학습 플랫폼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엔비디아는 이 분야에서 구글·테슬라·피겨AI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실제 제조 현장에서 쌓인 현실 세계 데이터가 필수적인데, 미국은 제조업 기반이 약하다. 업계 관계자는 “피지컬 AI 분야에서 중국이 엄청난 제조 현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빠르게 추격하고 있어 엔비디아 입장에선 제조업이 강한 한국 기업과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의 전략은 명확하다. 한국 제조업을 자사 플랫폼에 락인(Lock-in)하는 것. 옴니버스(디지털 트윈)·아이작(로봇)·코스모스(피지컬 AI) 등 자사 플랫폼을 국내 제조업체에 심어 글로벌 표준으로 굳히고, 한국 공장과 로봇 생태계가 엔비디아의 칩과 플랫폼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지난 1일 대만 GTC 타이베이에서 젠슨 황이 ‘코리아 파트너 나이트’를 열고 “한국은 우리 생태계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KB증권 김동원 리서치본부장은 “그만큼 엔비디아의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각자의 노림수
국내 기업들의 셈법은 제각각이다. 삼성전자와 SK그룹의 최대 목표는 엔비디아와의 메모리 공급 협업 강화. AI 반도체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포석이다. LG는 엔비디아와 협업해 가전·전장 중심 기업에서 ‘피지컬 AI 플랫폼’ 기업으로 재평가받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LG이노텍의 센서와 기판, LG전자의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을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방안도 논의 테이블에 오른다.
두산은 건설기계·발전기기·로봇에서 쌓아온 운영 데이터를 엔비디아 피지컬 AI에 학습시켜 ‘두산 맞춤형 모델’을 확보하려 한다. 전력부터 AI 서버 기판 소재, 로봇까지 3중으로 엔비디아 생태계에 올라타겠다는 것. 작년 엔비디아로부터 삼성·SK·현대차보다 많은 GPU 6만 장을 받은 네이버는 피지컬 AI 플랫폼 공동 개발로 몸집을 키우고, 나아가 국방 AI까지 개발하겠다는 전략이다. 젠슨 황은 오는 8일 경기도 성남 네이버 1784 사옥을 직접 방문할 계획이다.

악마의 스타성?
지난 ‘깐부 회동’에 이어, 이번 방한에서도 젠슨 황의 행보는 회의실 밖으로 이어진다. 오는 5일 저녁 서울 성수동 삼겹살집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 주요 총수들과 ‘소맥 회동’이 예정돼 있다. 두산 베어스 홈경기 시구 가능성도 거론되고,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도 이달 방송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대만 매체 연합보는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세심히 설계된 야시장 외교”라고 평가했다. AI·반도체라는 전문용어 대신 야시장·삼겹살·야구 등 누구나 이해하는 공통 언어로 소통하면서, 엔비디아와 젠슨 황 개인의 브랜드를 대중에게 더 친근하게 각인시키는 전략이라는 분석. 실제로 국내에서는 그의 동선과 관련 상장사 주가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민간 제작 사이트 ‘젠슨 황의 발자취’까지 등장했다. 젠슨 황이 언급하는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는 ‘젠슨 황 랠리’ 현상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업계는 이번 방한이 작년 깐부 회동처럼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 젠슨 황은 최근 대만에서 엔비디아의 연간 지출을 1,500억 달러(약 229조 원)까지 늘리겠다고 밝혔고, 방한을 앞두고 “항상 한국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구체적인 투자 규모와 실질적 협력 관계가 이번 방한에서 나올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