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서 들은 내 생애 최악의 멘트 6
Editor Comment
침대 위에서 관계를 망치는 건 행동보다 쉽게 내뱉은 한마디 때문일 때가 의외로 많다. 말 한마디로 사랑을 얻고, 또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제의 말들은 대개 아주 거창하지 않다. 필터링 없이 무심코 던진 비교, 장난처럼 포장한 평가, 상대에게 나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질문, 혹은 상대의 망설임을 밀어붙이는 말들이다.
연애와 성생활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는 ‘분위기를 살리는 멘트’, ‘이렇게만 하면 애인에게 사랑받는다’라는 식의 조언이 많다. 솔직한 표현은 분명 관계를 더 가깝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말은 솔직함이 아니라 무례함이 되고, 어떤 말은 농담이 아니라 상처가 된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가장 사적인 순간의 온도를 한순간에 떨어뜨릴까. 몇몇 이들에게 침대 위에서 들었던 최악의 멘트와 그 이유를 물어봤다.

비교형 멘트
전 애인과 비교하는 말을 내가 침대 위에서 듣게 될 거라곤 상상해본 적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가장 사적인 순간에, 누군가 방문을 확 열고 들어와 그 장면을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상대는 단순한 경험담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성별을 가진 나로서는 그 말이 경험담이 아니라 평가와 비교로만 들렸다. 그 순간부터 나는 이 사람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보다, 누군가와 견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왜 내가 지금 여기서 전 애인의 취향과 경쟁해야 하지? 왜 가장 가까워야 할 순간에, 나는 갑자기 비교 대상이 되어야 하지?
개인적으로는 최근 데이팅 앱과 SNS를 통해 사람을 쉽게 만나고 쉽게 비교하는 문화도 이런 감각을 더 예민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관계 밖에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비교당한다. 외모, 매력, 조건, 취향, 라이프스타일까지 끝없이 비교되는 시대다. 그런데 가장 온전한 내 편이 되어줘야 할 사람에게, 가장 사적인 순간에 비교당한다는 건 생각보다 모욕적이다. 비교와 경쟁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침대 위만큼은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누군가보다 나은지, 못한지 평가받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이런 말은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

평가형 멘트
대놓고 욕을 들은 것보다 더 오래 남았다. “왜 이렇게 못해?”처럼 공격적인 말도 아니었다. 말투만 보면 걱정에 가까웠다. 내가 별 반응이 없으니 답답했는지, 상대가 “원래 이렇게 못 느껴?”라고 물었다. 이상하게 그게 더 모욕적이었다. 내가 무슨 고장 난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그날 나는 싫었던 게 아니다. 긴장했고, 아직 편해지는 중이었고, 상대의 속도가 나와 조금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걸 “못 느끼는 사람”으로 정리해버리니까 갑자기 내 몸이 문제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는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느끼려고 애쓸수록 더 멀어졌다.
사실 침대 위에서 누가 완벽하게 정답처럼 반응할 수 있나. 사람마다 속도도 다르고, 긴장하는 방식도 다르고, 좋은 걸 표현하는 방법도 다른 법인데···. 그 사람이 정말 궁금했다면 천천히 하자고 되물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못 느껴?”라는 말은 질문이 판정을 받는 느낌이었다.

외모 지적형 멘트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미 몇 번 만났고, 서로 좋아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것도 관계가 끝난 후 “사진보다 살이 좀 있네?”라고 했다. 너무 뜬금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더 싫었던 건 바로 뒤에 붙은 말이었다. “아니, 싫다는 뜻은 아니고.” 보통 그 말을 붙이는 순간 이미 싫은 말이지 않은가. 싫다는 뜻이 아니면 굳이 왜 말했을까. 내 몸을 보고 머릿속에서 사진과 대조했다는 뜻 아닌가.
요즘은 사진을 보고 만나는 일이 많다. 프로필 사진, 인스타그램, 보정 앱, 잘 나온 각도. 나도 안다. 사진 속 내가 늘 실제의 나와 같지는 않다는 걸. 하지만 그걸 가장 벗은 순간에 확인받고 싶지는 않다. 그때는 사람이 아니라 상품 실물 검수 받는 느낌이 든다. 말한 사람은 기억도 못 할지 모른다. 그런데 들은 사람은 거울 볼 때마다 그 문장을 다시 듣는다. 몸에 대한 말은 칭찬할 게 아니면 하지 않는 게 낫다. 특히 가장 취약한 상태에서는 더더욱.

자기확인형 멘트
고객 만족도 조사 현장이 아니다. 처음에는 “좋아?” 정도였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질문이 전부 자기 쪽으로 향했다. “나 잘하지?”, “나 정도면 괜찮지?”, 나중에는 “솔직히 나 정도면 잘하는 편 아니야?”까지 갔다. 속으로 생각했다. 시험도 아니고 성적이라도 매겨줘야 하는 건지. (웃음)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서 처음엔 웃으면서 “응”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응” 한 번에 연이어 다음 질문이 또 왔다. 더 확실하게 칭찬해야 할 것 같고, 더 크게 반응해야 할 것 같고, 내가 정말 좋은지보다 상대가 만족할 만한 피드백을 주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나쁜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 불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불안을 왜 내가 그 자리에서 처리해줘야 하나. 나는 칭찬 자판기가 아니다.

디지털 기록형 멘트
분위기는 괜찮았다. 정말로. 그런데 상대가 휴대폰 쪽을 보면서 “우리 이거 찍어놓으면 재밌겠다”라고 했다. 그때 머릿속이 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리벤지 포르노, 클라우드 유출 같은 단어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상대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더 싫었다. 너무 가볍게 말해서. 나에게는 전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닌데, 상대에게는 그냥 장난처럼 보인다는 게 불안했다. 거절하면 내가 너무 진지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고, 넘기자니 이미 그 말을 들은 이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요즘은 뭐든 너무 쉽게 기록된다. 밥 먹은 것도 찍고, 여행 간 것도 찍고, 울고 웃는 것도 찍는다. 그래서 사적인 순간까지 기록하고 싶어 하는 마음 자체가 아주 낯설진 않다. 하지만 침대 위의 기록은 다른 문제다. 추억이 아니라 위험이 될 수 있으니까. 특히 기록의 통제권이 한쪽에게 넘어가기 쉬운 휴대기기의 경우, 그 불안은 오래 간다. 나는 누군가를 믿는 것과 파일을 믿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있지만, 파일은 관계가 끝난 뒤에도 남는다. 그걸 지울지, 보관할지, 보여줄지, 잃어버릴지 내가 통제할 수 없다면 그 기록은 절대 가볍지 않다.

연기 강요형 멘트
나는 원래 조용한 편이다. 좋으면 더 조용해지는 편에 가깝다. 집중하면 말이 줄고, 편하면 오히려 몸에 힘이 빠진다. 그런데 상대는 그걸 재미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중간에 “소리 좀 내봐”라고 했다. 처음엔 못 들은 척했다. 그런데 한 번 더 “너무 조용한데?”라고 하더라.
그때부터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더 신경 쓰였다. 소리를 내면 가짜 같고, 안 내면 분위기 못 맞추는 사람 같고. 그 뒤로는 아무것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 사람이 보고 싶었던 건 아마 현실의 내가 아니라 자신의 판타지 속 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더 확실하고, 더 뜨겁고, 더 알아보기 쉬운 반응. 그런데 현실의 사람은 그렇게 일관되게 연출되지 않는다. 좋아도 조용할 수 있고, 긴장하면 웃을 수도 있고, 익숙하지 않으면 굳을 수도 있다.
나는 누군가의 장면이 되려고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상대가 내 반응이 궁금했다면 “괜찮아?”라고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소리 좀 내봐”는 질문이 아니라 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