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솔직한 작가 이배 “여전히 자신 없을 때가 많습니다”
Editor Comment

이배 작가를 처음 본 날, ‘겸손’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레 피부로 와닿았다. 그는 많은 기자들을 앞에 두고 “화가라고도 하고, 예술가라고도 하는데 나는 예술을 얼마만큼 잘 이해하고, 알고 있을까. 사실 잘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면 할수록 잘 모르겠고, 전시 준비하면서 너무 자신이 없던 적도 많아서 누구한테 말은 못 하지만 절망적이고 캄캄할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라고 조심성 있게 말했다. 그 순간 솔직한 심정을 어쩌면 들키지 말아야 할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이 작가 뒤로, 아주 웅대한 어른의 모습이 보였다.
<En attendant: 기다리며>는 뮤지엄산에서 처음 맞는 국내 작가 기획전이다. 이배 작가의 50여 년 작업 세계를 조망하는 전시로, 이미 많은 이들이 발걸음하고 있기도 하다. 전시 관람에 있어 어쩌면 우리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만 길들여졌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뮤지엄산에선 이배 작가의 가장 진지하고, 스스로 순수해지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을 직접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몇 가지 포인트만 알아도 몰입도는 확 달라진다. 지난 전시 가이드에 이어 <En attendant: 기다리며> 전시도 맛깔나게 볼 수 있도록, 이미 관람 후라면 깊이 있게 남을 수 있도록 일종의 안내서를 준비했다. 이배 작가가 터놓고 이야기한, 그리고 뮤지엄산의 이번 전시를 기획한 노은실 학예실장이 제시한 가이드를 지금 바로 아래에서 확인해 보길 바란다.
알고 보면 다르게 보이는
<En attendant: 기다리며>

바베큐 숯 한 봉지로 거장이 된 남자
“나는 농부의 아들입니다”. 이배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한 법. 이배는 경북 청도 출신이다. 문명의 혜택이라곤 없는 자연 그 자체인 곳에서 그는 들판의 냉이처럼 여기저기 흔들리며 자랐다고. 아버지의 불 같은 반대에도 예술의 길을 선택한 그는 홍익대학교, 대학원 졸업 후 교사 생활을 하다 돌연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에서 8년을 체류할 당시 생활고는 당연했고, 자연스레 작업할 재료를 찾다가 파리 주유소에서 흔하게 판매하는 500원짜리 바베큐용 숯 한 봉지를 발견했다. 이 숯을 보며 정월 대보름만 되면 동네 사람들이 집 앞에서 달 집 태우기를 하고, 다음날 산더미처럼 쌓인 숯을 동네 아주머니들이 광주리로 조금씩 담아가던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렸다. 죽은 재료 같지만 사실은 강인한 생명력을 머금은 숯덩이. 이방인의 신분으로 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청도를 생각했다.
검정 안에 100가지 색
경제적인 부담으로 값싼 숯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사람들이 빈약해 보인다고 생각할까? 이배는 친구와 함께 숯을 쓰는 근사한 변명거리를 지어냈다. “나는 수묵의 세계에서 왔다. 푸른 난초를 먹으로, 검정으로 그리는 동양권에서. 그리고 그걸 만드는 것이 숯이다”. 그는 재료에다가 갖은 상상과 우리 문화를 입혀나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실제 이배가 작업하는 과정이 되었고, 작가로서 활동하는 과정이 되었다. 그는 현재까지도 하고 있는 숯은 물론 같지만 훨씬 더 다양해졌고, 의미 역시 보다 확산됐다고 말한다.
숯은 다 타고 남은 것, 즉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흔히 생각한다. 이배는 이 관점에서 시작했다. 나무로 태어나 자신의 몸을 태우고 숯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는 순환 구조. 그에게 숯은 소멸이 아니라 변환이었다. 모든 것을 뜨겁게 태워낸 후에 남은 단단한 덩어리, 그 안에서 근원의 힘을 발견한 것이다. 숯 가루를 갈아 캔버스에 바르고, 숯 조각을 접합해 표면을 연마하고, 대형 숯덩이를 전시장 바닥에 세우는 것까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형태로 숯의 표현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그 긴 탐구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모든 색을 포용한 검은색에는 하나의 빛깔이 아닌 100가지의 색이 들어 있다”. 즉 어두운 게 아니라, 다 품고 있다는 말.

“자꾸 나이는 먹어가고, 걱정은 늘지만
새로워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여전히 제 안에 많습니다”
이배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은 뮤지엄산에게도 초심을 찾는 의미였다. 근래 해외 작가 전시를 자주 선보였던 뮤지엄산은 다시 국내 작가에 집중하기로 한 뒤 어떤 작가를 소개할지 고민해 왔다. 작품도 좋아야 하지만 기세가 가장 좋은 작가. 공교롭게도 그 고민을 나누던 학예실 전체가 이배 작가를 만장일치로 선택했다고. 그리고 뮤지엄산의 제안을 3년 전 흔쾌히 받아들인 이배는 공간을 수십 번 방문하며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배 작가를, 늘 깊은 사유의 세계를 선물해 준 그의 전시를 엮은 노은실 학예실장을 만났다. 이들이 들려주는 비하인드와 전시 가이드를 통해 알고 난 <En attendant: 기다리며>는 단순히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 전시이길 바란다.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공간을 거닐고, 산책하고, 멈춰 서서 작품을 제대로 응시하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집중한 부분은 어떤 걸까요?
뮤지엄산 전시를 준비하면서 1년 반 동안 이곳에 20번 정도 왔는데요. 이 공간에 왔을 땐 무엇을 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수도원에 온 것처럼 마치 내가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편안함을 많이 가졌던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그러리라 생각하고요. 그래서 전시를 준비하면서 “과연 내가 무엇으로 이 공간에 내 작품을, 내 생각을 여기에 세울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많았어요. 제가 지금까지 한 전시장 중 제일 큰 공간이기도 하고, 쉽게 내 말을 잘 들을 것 같지 않은, 자연과 조화된 굉장히 자기 존재감이 강한 전시장이라 작가의 생각이 출입구를 잘 찾지 않으면 수용되지 않을 것 같은 부담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근원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 수 있겠다’란 크게 집중했죠.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환경에 자랐고, 내가 작가로서 무엇을 꿈꾸면서 지금까지 와 있는지, 그런 나의 삶 전체를 되돌아보는 전시 준비가 되었습니다.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에서 준비하면서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건 저희 아버님과 고향입니다. 제 마음속 깊은 곳엔 농부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뛰어놀고, 자라고, 성장했는지 되짚어 보며 전시를 준비했어요.
| ‘기다리며’라는 문장 조각을 제목으로 고르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다리며’라는 제목은 스스로에게서 우러나온 표현이었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저에게 수동적인 태도가 아닌 완결되지 않아 부족하고, 모자라고, 여러 가지 아쉬움을 가진 마음으로 읽혔습니다. 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나 예술가라고 하는데요. ‘사실 내가 예술을 얼마만큼 잘 이해하고, 알고 있을까’라 물으면 사실 잘 모르겠단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면 할수록 잘 모르겠고, 전시 준비하면서 너무 자신이 없던 적도 많아서 누구한테 말은 못 하지만 절망적이고 캄캄할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작가라는 건 무엇인가’ 곱씹었습니다. 가장 진지하고, 가장 스스로 순수해지려고 하는 노력. 그게 작가가 하는 일 안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기다림은 저에게 그런 시간과 과정에서 나온 제목입니다. 정말 내 마음의 상태. 그리고 미술관에서 전시를 준비하면서 1년 이상 절망했던 것, 오랫동안 작품을 했는데도 이렇게 상상력이 부족하고, 아직도 잘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아마 거기서 나온 제 염원이겠지요.
| 숯은 작가님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30년 넘게 붙잡고 있는 이유, 그 작업의 핵심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제가 숯을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쓰고 있습니다. 1990년도에 프랑스 파리에 가면서 숯으로 처음 작품을 하게 됐었죠. 한국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큰 혼란을 너무 많이 겪었던 시기였습니다. 서양 현대미술에서 동양의 미술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문화적으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부족함, 아쉬움, 제자신에 대한 혼란을 겪었던 것이죠. 그게 제가 숯을 하게 된 큰 이유였고요.
그러나 너무나 오래해서 지루해 보이고, 진부해 보이고, 반복적이어 보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제 작업을 통해서 동양 문화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이드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아직도 숯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시대 상황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다면 과연 시대 작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어요. 자꾸 나이는 먹어가고, 걱정은 늘지만 새로워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여전히 제 안에 많습니다.
| 세계적으로 K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모두가 잘 몰랐던 시기에 한국적 요소로 도전하셨던 작가님은 어떤 소회나 새로운 다짐을 갖고 계신가요?
최근 제가 한국 작가라는 것을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파리에서 개인전을 하면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옵니다. 그리고 똑같은 조건, 똑같은 가격의 그림이면 한국 작가의 작품을 사려고들 하죠. 그런 위상을 보면 나라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싶어요. 저에게는 정말 감사하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데, 그게 그냥 되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있었겠어요. 노력도 있었겠고요. 저도 거기에 많은 덕을 봤다고 생각하고요. 얼마나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지만 제가 새로운 젊은 세대들과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들 정도로 저는 여러 기회를 얻었습니다. 받았고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전시 관람 전 가이드
| 이배 작가의 작품을 일전에 본 적 없는 관람객들에게 그를 소개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배는 지난 30여 년간 ‘숯’이라는 단일한 매체를 통해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순환 원리를 탐구해 온 작가입니다. 그에게 숯은 단순한 재료를 넘어 불을 통과하며 응축된 거대한 에너지를 상징하는 ‘정신성의 매체’입니다. 작품 속의 ‘검정’은 모든 빛을 흡수함으로써 무한한 색을 내포하는 깊이의 상태이며, 동시에 모든 가능성을 품은 잠재성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한국 전통의 수묵 정신과 서양의 추상미술을 결합하여 현대적이고 보편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준비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이배 작가가 가진 의외의 면이 있었나요?
이배 작가는 절제된 조형 언어와는 달리, 매우 치열한 내면의 질문을 지속하는 작가입니다. 거장의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고백하실 만큼,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며, 더욱 순수하고 본질적인 상태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힘은 다시 한번 예술과 태도에 대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시 기획 초기 단계부터 최근까지도 공간에 가장 적합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작품 구성을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열정적인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자신의 작품이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공간을 배려하고 자연과 소통하는 흔적이 되길 바라는 섬세한 사유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 뮤지엄산 전시장에 처음 들어선 관객에게 추천하는 감상 순서나 포인트가 있을까요?
이번 전시는 공간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관 입구 8m 높이의 거대한 <불로부터> 숯 조각에서 시작해 백과 흑의 공간을 지나며 감각이 점차 변화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뮤지엄산의 고요한 건축 동선과 작품의 내적 서사가 만나는 지점에서 사유의 장이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 관람은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걷기’를 통해 예술과 자연이 하나로 완성되는 순간을 만끽하시길 기대합니다.
| 이번 전시를 어떤 태도로 보고 갔을 때 남는 게 있을까요?
이번 전시는 이해보다 체험에 가까운 전시입니다. 작품을 해석하려 하기보다, 잠시 멈추고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기다림이라는 개념처럼, 관람 자체도 하나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호흡과 감각에 집중할 때 작품은 더 깊게 다가옵니다. 결국 이 전시는 관람객 각자의 시간 속에서 완성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 관람 후 가이드
| 전시를 이미 관람한 사람에게 전시를 직접 소개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번 전시는 ‘시간의 층위’를 공간으로 풀어낸 경험적 구조의 전시인데요. 숯이라는 물질이 품고 있는 시간, 작가의 반복된 행위가 축적된 시간, 그리고 관람객이 그 사이를 걸으며 체험하는 시간이 서로 겹쳐지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합니다. 각 전시 공간은 흑과 백, 밀도와 여백, 생성과 소멸이라는 대비를 통해 감각의 변화를 유도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히 작품 하나하나보다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장면처럼 다시 떠올려 보시면, 전시가 하나의 ‘여정’으로 읽히는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전시는 완성된 결과를 보여주기보다,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와 그 안의 시간성을 관람객에게 체험하게 하는 전시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이 놓쳤을지도 모르는 디테일이 있다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청조갤러리1, 화이트 공간에서는 종이와 공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을 주목해 보시면 좋습니다. 특히 ‘호치케스 작업‘은 미세한 물성과 비물성이 교차하며 긴장감 있는 감각을 형성합니다. 이어지는 청조갤러리2, 블랙 공간에서는 숯의 종류에 따라 다른 질감과 빛의 반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공간은 신발을 벗고 입장함으로써, 관람객은 발바닥의 촉각과 걸음의 속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설정은 관람을 자연스럽게 느리게 만들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통해 보다 깊이 있는 공간 경험과 작품과의 관계를 형성하도록 유도합니다.
| 작가님과 협업하며 마음에 남는 에피소드나 작가님과의 대화가 있었다면 공유해 주세요.
이번 전시에는 현장성 있는 작업들이 꽤 많은데요. 청조갤러리 1전시장의 ‘호치케스(스테이플러) 작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작가님이 전시 현장에서 3만 5,000개의 호치케스 알을 하나하나 박는 순간, 새벽 고요한 뮤지엄에 호치켓 박는 소리가 전체 울림이 된 순간이었죠. 두 번째는 청조갤러리 2전시장 ‘붓질’ 작품입니다. 이 작업도 새벽에 진행되었는데요. 붓을 들고, 벽에 쌓아놓은 숯 조각 사이에 한 획을 긋기 전에 잠시 묵상하며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경건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장장 7시간 정도를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며, 작가의 삶의 태도와 작업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 순간이었습니다.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으시던 그 열정과 창의성이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 전시를 볼 땐 관람객들마다의 해석이 이루어집니다. 각자의 해석에 보탬이 될 작가님의 메시지나 큐레이터님의 시선을 공유해 주세요.
먼저 청조갤러리C0, ‘붓질’ 회화와 야외 무의공간의 ‘붓질’ 조각을 계절과 날씨의 변화 속에서 다시 마주해 보길 권합니다. 이 작품들은 고정된 형상에 머물지 않고 시간대에 따라 변화하는 빛의 각도와 그림자에 반응하며 매 순간 다른 표정을 보여줍니다. 특히 산의 능선과 작품이 만나는 지점은 자연과 예술이 교차하는 찰나의 미학을 선사하며 건축과 조화되는 장소 특성적인 감동을 새롭게 발견하게 합니다. 청조갤러리C3에서는 9m 높이의 압도적인 영상과 작가의 고향인 청도의 흙으로 조성한 논두렁 설치 작품에 주목해 보길 추천합니다. 이 공간은 전시 기간의 흐름에 따라 실제 생명력이 자라나고 변화하는 과정을 품고 있어, 재방문 시 이전과는 다른 밀도의 생명력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살아있는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유동하는 지점들을 담고 있기에, 다른 계절과 날씨 속에 다시금 방문하여 매번 새로운 감각의 시간을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 이전 전시들과 뮤지엄산의 전시는 또 다른 작가의 면을 보여줄 거라 생각합니다. 전시를 다 보고 난 관객들이 ‘이런 부분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라는 게 있을까요?
이배 작가는 스스로를 “땅의 말을 잘 듣는 농부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땅을 파는 사람”에 비유합니다. 숯이라는 거친 물성을 억지로 통제하거나 제도하려 들지 않고, 그 속성을 온전히 이해하고 순응할 때 비로소 숯이 가장 숯다운 모습을 드러낸다는 작가의 철학에 귀를 기울여 보길 권합니다. 전시장의 동선을 따라 걷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자 기다림의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바로 해석하려 하기보다, 자연의 섭리에 몸을 맡기듯 작품 사이를 거닐며 ‘비워냄’을 통해 채워지는 역설적인 충만함을 경험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 전시는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기다림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변화가 생성되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관람 이후에는 자신의 삶 속 시간과 상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존재의 관계를 다시 사유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전시는 결국 외부의 경험이 아니라, 내면으로 확장되는 질문을 남깁니다.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던 그 ‘기다림의 시간’이 일상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