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Comment

페기 구(Peggy Gou)와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가 함께한 [I Believe In Love Again]이 발매됐다. 이를 기념해 한국에서 오랜만에 팝업을 열고 작은 공연을 선보인 바. 유럽, 미주, 아시아 등 전 세계를 무대로 자신만의 에너지를 전하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그는 지금 가장 뜨거운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어린 시절 런던으로 유학 간 뒤 패션을 공부하다가 첫사랑의 직업이 DJ였고, 그렇게 자연스레 이 세계로 빠져든 페기 구. '당당함'이란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페기 구와 만났다. 그가 전하는 삶에 대한 조언과 다음 스탭에 대한 이야기까지.

INTERVIEW

｜오늘은 무슨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나요.

항상 음악이 있는 곳에 있다 보니 사일런스(Silence)를 즐길 때가 많아요. 운전할 때나 아침에 깰 때는 음악을 많이 듣긴 하는데, 종종 환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음악을 만들 때도 그렇고. 계속 들으면 막힌 느낌이랄까. 일주일 뒤에 들으면 안 들렸던 것도 들리고, 다른 시선으로 생각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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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하루 루틴은 어떻게 되나요.

항상 거의 비슷해요. 하도 많은 나라를 다녀 조금씩 다르지만, 그래도 몸이 힘들지 않게 스스로 정한 규칙들을 따르려고 해요. 아침을 먹는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저녁을 항상 이 시간에 먹는다거나. 저만의 룰이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몸도 힘들고 지치더라고요. 규칙적으로 생활해 마치 한곳에 있는듯한 착각에 들게끔 하려고 하죠.

｜서울과 런던 그리고 베를린까지. 런던에서 패션 공부를 한 뒤 음악이 하고 싶어 베를린에 갔어요. 만일 한국에 살았으면 어땠을까요.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지.

가끔 해요. 그런데 디제이는 안 했을 것 같아요. 뭔가 엔터테인먼트 관련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뭘 해도 잘 했을 거라는 자신감은 있어요. (웃음)

｜이러한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저를 굉장히 잘 알거든요. 저의 좋고 안 좋은 점이 무엇인지 아는 거죠. 그걸 알아야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인정해야 해요. 더 어렸을 때는 인정 못했어요. 물론 안 하려고 한 것도 있었고. 경험이 쌓이고 나이도 들어가다 보니 변한 것 같아요. 저를 계속 바라보려고 하죠. '내가 왜 이때 이 기분을 느꼈지?'라고 말하며 나에 대해 배우고, 또 고쳐야 할 부분은 고치고.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고 하지만, 잘못한 걸 인정하고 더 잘할 수 있는 걸 바라보는 것은 중요해요. 저한테 채찍질을 많이 하죠.

｜이 말을 들으니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나는 생각이 드네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달까요. (웃음)

남들과 비교하지 않았으면 해요. 제일 안 좋은 습관이에요. 한국 분들이 저에게 '부럽다'는 말을 많이 해요. 외국에서는 '부럽다'는 말보단 '멋지다' 혹은 '영감을 받는다'는 반응을 받죠. '부럽다'는 건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아 시작된 말 같달까. 물론 압박도 많고 눈치도 많이 보이는 환경 속에서 어렵다는 걸 알아요. 다만, 본인들이 하고 싶지 않은 걸 하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한국 사람들은 완벽주의 성향도 있어 정말 일도 잘하고 똑똑한데, 남들과 비교하고 부러워만 안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안타까워요.

｜이런 내면의 단단함을 지니기까지는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저도 당연히 자존감이 낮을 때가 있었죠. 근데 그걸 인식하는 순간 자존감이 높아지더라고요. '나는 지금 아무것에도 영감받는 게 없고 삶이 우울하네'라는 생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자존감이 높아졌어요. 어떤 모습의 나라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하는 거죠. 많이들 물어보는 질문이에요. 언니처럼 자존감은 어떻게 높일 수 있냐. 지금껏 많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지만, 제 자신을 믿었으니 적당히 받아들였죠. 한 가지 중요한 건 해보고 깨닫는 거랑 안 해보는 건 달라요. 해보고 실패해서 후회를 할지언정, 늘 해보자는 마인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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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국가마다 공연을 했을 때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떼창'하는 문화가 최고예요. 처음 음악을 틀고 울었던 적이 바로 한국에서였어요. 한국어로 음악을 만드는데 유일하게 떼창이 가능한 국가가 한국밖에 없죠. 처음 그 경험을 하게 되어 굉장히 감동받았어요. 나라마다 관객들이 달라 늘 이 부분을 공부하려고 해요. 그러니 저는 어디서 틀어도 자신이 있죠. '이탈리아는 이 음악을 좋아하고, 이런 걸 틀었을 때 반응이 좋다.' 또 '영국은 보컬 들어가는 걸 좋아하네' 등. 많이 공부하고 배우려고 해요.

｜스스로 한국인이 몇 프로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진짜 한국인일 때는 한국인스럽긴 한데, 한 50:50이지 않을까 해요. 아닌가요. (웃음)

｜본격적으로 이번 싱글에 대해 얘기해 보면, 레니 크라비츠의 첫 만남이 궁금합니다.

추수감사절 디너 자리에서 만났어요. 공통으로 알고 있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갑자기 여기 세상에서 제일 쿨한 사람이 온다고 하더라고요. 구글에 'Coolest person in the world'라고 검색해 보라고 했어요. 그러다 레니 크라비츠가 온다는 걸 알았죠. 옛날부터 정말 팬이었던 사람. 레니 크라비츠는 처음 제가 누군지 몰랐지만, 제가 그의 딸 '조 크라비츠'가 출연한 <더 배트맨> 영화의 노래를 작업했다고 말했더니 그 계기로 저에게 관심을 보였죠. 그 후 레니가 제 음악을 조금 들어본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DM이 왔어요.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영광이었죠.

https://www.instagram.com/p/CthauN7N8rp/

｜엑스엘 레코딩과의 계약 이후 오랜만의 싱글이에요. 페기 구의 꿈이었던 곳. 그 꿈을 이뤘을 때의 소감은 어땠나요.

패션을 공부하던 대학 시절, 레이블에 대해 알고 싶어 엑스엘 레코딩에 이메일을 수차례 보냈어요. 돈을 안 받아도 되니 저를 인턴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정말 레이블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했는데, 당시 한 번도 답장을 받은 적이 없어요. 이후 저에게 연락이 오고 처음 미팅을 할 때, 가자마자 장난스레 메일함 좀 확인해달라고 했어요. (웃음)

｜레니 크라비츠와 이번 작업을 하면서 재밌었던 일화가 있는지.

저만큼 레니 크라비츠도 완벽주의였어요. 이렇게 불러달라고 보이스 가이드를 보냈는데 아예 다르게 부르더라고요. 그가 말하길 다른 DNA를 넣어 불렀다고. 처음엔 이걸 듣고 사람들이 그인 줄 알까 싶었어요. 처음 레니 크라비츠를 소개해 준 분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더니, 역시나 '이 여자 노래 잘한다'라는 반응이 나왔죠. 레니 크라비츠라고는 상상을 못한 거예요. 그게 좀 색다르고 재밌었어요. 그가 다르게 부르면서 저도 제 목소리를 어떻게 쓸지 고민했고 그 과정이 재밌었어요.

｜[I Believe In Love Again]에는 어떤 마음을 투영했나요.

'사랑을 다시 믿는다'는 의미의 타이틀이 참 간단하면서 낯간지러울 수 있어요. 근데 저는 사람들이 진짜 그렇게 믿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사랑을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는 것. 어느 타입의 사랑이든 말이죠. 또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으면 해요.

https://www.instagram.com/p/CzThGPyPCZS/

｜석양이 지는 그런 섹시한 순간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라고 말하던데.

레니 크라비츠가 이 노래를 동의한 이유 중 하나가 노래가 섹시하다는 감상이었어요. 지금 뮤직비디오를 준비하고 있는데, 차 운전하는 신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 장면이 석양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렇게 대답했어요.

｜반면 [(It Goes Like) Nanana]는 언제 들었으면 하나요. 사랑, 따스함, 신남이라는 감정이라고 곡을 표현한 걸 보았는데.

사람들은 'Summer anthem'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저도 이 노래가 여름이랑 잘 어울려서 6월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 노래를 들었을 땐 지난 여름의 추억이 떠올랐으면 해요. 행복했던 기억을 상기했으면 좋겠는 것.

｜혹시 팬들이 남긴 댓글도 다 보는지. 인상 깊었던 피드백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존경하는 아티스트가 저한테 피드백을 줄 때 정말 행복해요. '그 노래 좋더라'고 좋아하는 분들에게 연락이 올 때. 저도 다 댓글 봐요. 일일이 자세히는 못 보지만 대략적으로 훑어보죠. 또 친구들이 '이 댓글 봤어?'라고 보내줄 때도 있고. 저는 사실 부정적이거나 정말 말도 안 되는 댓글이 있으면 차단해요. 'Don't bring your negative energy'

｜로만 플루겔의 ‘Fatty Folders’가 음악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앨범이라고 들었어요. 현재의 페기 구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앨범이 있다면.

코로나19 때 90년대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시대를 뛰어넘어 듣고 싶은 음악은 대부분 그 시대에 나왔다고 생각해요. 몇 십 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음악. 레니 크라비츠 음악도 그렇죠. 오십 년 뒤에 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구체적이거나 특정한 앨범에서 영감받기보단, 타임 리스한 음악들을 많이 듣고 거기서 여러 영감을 얻죠. 제가 죽고 난 뒤 제 노래도 그렇게 여겨졌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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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로운 영감의 창구가 있다면 어디일까요.

음악 외에도 많은 데서 영감을 받아요. 제가 하지 못하는 다른 아트를 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죠. 그림, 사진 등. 왜 저런 생각을 하고 어떤 시선으로 본 걸까 궁금해요.

｜올해 페기 구가 생각하는 최고 아티스트는?

스스로한테 크레딧(Credit)을 줘도 될까요. (웃음) 사실 저에게 집중하고 몰두하다 보니, 다른 아티스트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해요. 이번 한국 팝업에서도 느꼈던 부분이에요. 요새 잘 하는 디제이라고 소개를 받았으나, 잘 몰라 더 많이 리서치하고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한국 아티스트로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몇 개 지니고 있어요. 또 ‘최초’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싶은 일이 있다면.

사실 엄청 많아요. 많이들 전부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웃음) FIFA 19 사운드 트랙에 수록된 것도 최초고, BBC에 나온 것도 최초고, 여자 디제이로서 헤드 라이너를 한 것도 최초인 공연이 많아요. 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래미 어워드를 공략해 볼까요. 아, 조금 더 꿈이 커야 될 것도 같네요. 단 하나 분명한 건 그런 일들로 한국을 더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면 해요.

｜디제잉, 프로듀싱 등 무엇을 할 때 가장 큰 에너지를 받나요.

디제잉을 할 때 가장 큰 에너지를 받아요. 프로듀싱하는 것보다는 재밌고 에너자이틱 하죠.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음악이 나오면 그 희열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이전에 [(It Goes Like) Nanana]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요. 스스로가 레벨업된 것 같달까요.

｜반면 후회되는, 잊고 싶은 순간도 있을까요.

정말 많죠. 그러나 잊고 싶은 순간은 없어요. 실패를 했다고 생각해도 그것조차 저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잊고 싶다기보단 그때 가장 많이 배운다고 생각하죠. 실수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려고 해요. 왜 이렇게 음악을 틀었지? 왜 이런 말을 했지? 생각하는 순간들이 참 많은데, 그때는 그런 이유가 있었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돌아봐요. 제가 가진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인 것 같아요. 이 때문에 제가 조금 더 성장하기도 하고요.

｜평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지금 친구가 말하길 'You can do better'이라고 하네요. (웃음) 그렇긴 해요. 늘 자신한테 저 말을 되뇌거든요. 개인적으론 'Why'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이 저보고 늘 호기심이 많대요. 뭐든 '왜'라는 질문을 하니 그런가 봐요. 저는 뭐든지 알고 싶어요. 왜 다들 이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죠.

｜좋아하는 일을 아직 못 찾았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선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안 해보고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죠. 안 해봐서 그래요. 이것저것 해봐야 해요. 저는 시간 낭비하는 걸 정말 싫어해서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어요. 일단 하고 저한테 안 맞는 건 빨리 깨닫죠. 어떤 일을 했을 때 스스로 열정이 느껴지지 않으면 빠르게 포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또 다른 걸 해봐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최대한 많은 걸 해보려고 하는 것. 그러다가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저조차 음악을 이렇게 좋아할지 몰랐어요. 음악 하기 이전엔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그리고 또 그전엔 화가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막상 호기심으로 음악을 시작해보니 정말 재밌었고 많이 좋아하게 됐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1t-CfqToO7o ｜음악은 살아가는데 어떤 힘이 되어주나요.

Everything.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에요.

｜페기 구에 대해 아직까지 대중이 모르는 점이 있다면.

대중들이 봤을 때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 생각보다 쉽고 친근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동네 언니처럼. (웃음)

또 많이들 모르는 부분이 저는 지금까지 매니저 없이 이 커리어를 일구었어요. 한국은 매니저가 서포트하는 느낌이라면 외국은 매니저가 아티스트를 끌고 가는 느낌이에요. 매니저 없는 아티스트가 거의 없죠. 저는 스스로 매니저 역할까지 해요. 혼자 제가 원하는 걸 꿈꿔오면서 실현시켰죠. 저와 관련된 모든 건 디테일까지 다 관리해요.

｜또 페기 구에게 빼놓을 수 없는 패션. 자신만의 쇼핑 스팟을 소개해 준다면요.

보통 온라인으로 많이 사긴 해요. 운이 좋게도 저한테 정말 많은 선물이 들어오는데, 그때 몰랐던 브랜드들을 많이 알게 돼요. 요새는 한국 브랜드들 정말 잘하고. 오픈 와이와이, 렉토, 레스트앤레크레이션 등 정말 잘하는 한국 브랜드가 많아요.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요.

음악적으로 얘기하면 디제잉을 떠나 뮤지션으로 더 성장하고 싶어요. 온전한 제 공연을 하고 싶다는 소망. 커리어 쪽으로 더 나아가고 싶어요.

｜연말은 어떻게 마무리할 계획인지.

2024년 12월까지 투어 스케줄이 다 예정되어 있고, 올해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공연으로 마무리하지 않을까 해요. 그때가 호주가 날씨가 좋아 기대됩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레니 크라비츠에게 하고 싶은 말.

앨범을 내고 드디어 해냈다는 안도감과 많은 감정들이 교차해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레니 크라비츠에게 그때 문자를 보냈어요. '8개월 동안 작업했는데 정말 고마웠다'고. 그동안 저를 존중해 주고 같이 해줘서 영광이었다고 말했고 그때 제 마음이 전해졌을 거예요. 그리고 그는 저에게 'You're the best. Amazing'이라고 말해주었죠.

페기 구 인터뷰 “저를 부러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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