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Comment

이끼바위쿠르르.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이들은 스스로를 비주얼 리서치 밴드라 소개한다. 흔한 용어로 아트 컬렉티브를 한다는 건데, 연구와 조사를 통해 시각적인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조직임을 좀 더 직관적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들의 행색에서도, 작품에서도 행보마다 날 것의 향이 풍긴다. 틀에 박힌 시스템보다는 세상과 대담히 마주하며, 동시에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겪어온 여러 경험들이 쌓인 탓이다. 억지 없이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삶일 수 있는 고결, 김중원, 조지은은 각자 또 함께 세상에 몸을 맡기고 흐름을 타고 있다.

｜각자의 언어로 본인과 이끼바위쿠르르를 소개 부탁한다.

고결 제주에서 태어나 물에서 헤엄을 잘 치지만 영법은 모른다. 취미는 크로스핏, (아직은 이름 없는) 밴드 활동이다. 궁금한 것을 찾고 꼬리 무는 것을 좋아하며 이끼바위쿠르르 멤버들과 함께 채집하고 탐험하는 과정들은 험해도 즐겁다.

김중원 경제활동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으며 취미활동으로는 밴드 ‘중창단’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활을 잘 가꾸는 것이라 믿고 있다. 청소를 미루지 않고, 계절에 맞춰 텃밭을 가꾸고, 따뜻한 밥을 해먹는 것 말이다. 이끼바위쿠르르의 활동도 생활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 중 하나이다.

조지은 나무와 친하다. 이주, 공동체, 나무, 흔적 등을 탐구하며 다층적인 접근 방식과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다. 가끔 만화도 그린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이끼처럼 확장하고자 하는 작업 정체성을 담았다고 들었는데.

‘이끼바위’를 고정으로 두고 우리가 하는 일마다 마지막 의성어를 바꾸는 것을 상상했었다. 예를 들어 ‘이끼바위 쿵’ 혹은 ‘이끼바위 쩝’ 등이다. 아직 우리의 활동이 더 진행되어야 가능하겠지만 작업의 방향마다 이름이 달라졌으면 한다.

｜이름에서 연상되듯 자연을 비롯해 각종 사회 이슈를 다루고 있다. 각자마다 뚜렷하진 않더라도 나름의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떠한 갇혀진 시스템 안에서 활동하지 않은 각자의 경험들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고결과 김중원은 미술을 공부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미술과 적응하고 있고, 조지은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보다 도시 혹은 이주 등 현실에 관한 프로젝트를 해왔다. 그렇게 여러 프로젝트를 만들고 세상과 만나던 경험들이 그 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셋 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연과 친하다. 김중원은 손으로 만드는 여러 가지 것들을 일상에 적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옛날 사람처럼 나무를 하고 불을 때고 텃밭을 가꾼다. 고결은 제주도 출신으로 바다와 친하다. 조지은은 작게나마 벼농사에 참여하며 산과 나무가 있는 곳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SNS에 그 흔한 멘션도 거의 없이 툭툭 올린 사진들에서 날 것의 향이 풍겼다.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하는 부자연스러움도 없었고, 그냥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삶인 느낌이랄까. 실제 당신들의 삶, 그러니까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사실 다른 창작자들과 비슷하게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업을 한다

고결 여러 가지 일을 하다 2달 전부터 알루미늄 폴회사 기획실에서 근무한다. 그래서 요즘 이끼바위쿠르르는 밤에 자주 모인다.

김중원 다양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 중이다. 평소에는 주로 집안일을 하는 편. 구옥에 살고 있어 집에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예술과 관련된 일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대량으로 썬드라이 토마토를 만들었다. 쉽지 않은 삶인 것 같다.

조지은 책 디자인, 작은 강의, 전시 디자인, 워크숍 등 여러 잡다한 일들을 하고 그런 일들과 작업들이 늘 시간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일상을 지낸다.

｜각종 채집을 하러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작품을 위한 과정이겠지만, 여행을 위해 타지로 떠나는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이 펼쳐질 것 같다.

우리는 리서치하면서 알게 된 사건들과 관련된 장소들에 가길 원한다. 실제로 그 장소들에 가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는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장소들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미즈키 시게루가 있었던 라바울 섬은 우리 상황으로서는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남동쪽의 섬 중 하나를 선택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 섬은 비행기, 배, 자동차를 골고루 여러 시간 타야 당도할 수 있었는데, 건조하고 황량한 섬의 풍경을 마주하고 나니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그제야 상상할 수 있었다. 단어로만으로 정확히 알 수 없는 실제의 ‘험한 바다’를 눈앞에서 보게 되니 ‘공포’와 ‘낯섦’이 동시에 밀려왔다.

태평양 티니안 섬 자살 절벽에서도 우리는 몹시 당황스러웠는데, 아무도 없는 태평양 바다 위에 혼자 떠 있는 듯한 생경함을 느꼈다. 별은 쏟아지듯 아름다웠지만 낯섦 가운데 공포도 함께 느꼈다. 아마도 과거의 누군가도 그런 공포를 느끼며 이 섬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유추한다.

[cycloneslider id="20213"]

｜작년 카셀 도큐멘타 15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표현 방법에 한계가 없는 팀답게 비디오, 사진, 조각, 설치 등을 한자리에서 보여줬다. 각 작품마다 저마다의 형식을 택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나. 혹은 구성이나 동선에 대한 이야기와 엮어 설명해 주어도 좋다.

카셀 도큐멘타 15에서는 카셀 자연사 박물관인 오토네움 공간에 작품이 설치되었다. 밝은 방과 어두운 방에 <해초이야기>와 <열대이야기> 두 작품이 각각 전시되었지만 이 두 가지를 연결해서 관람할 수 있도록 동선을 만들었다.

우선 <열대이야기>는 2채널 비디오로 검은 방에 상영되었다. 사운드도 크게, 비디오의 화면도 크게 프로젝션을 해서 비디오에 찍힌 영상을 잘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비디오에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되었던 광산의 풍경도 포함되었는데, 우리는 이를 또 다르게 표현하고자 폐광산에서 여러 흙을 채집해 기념비를 만들었다. 어두운 방구석에 놓인 이 작품은 ‘어떤 죽음’에 대한 기념비인 셈. 기억하지도 추모할 수도 없는, 흔적 없는 죽음들을 위한 것이다. 실제 태평양전쟁 당시 팔라우 섬의 보크사이트 광산, 앙가울 섬의 인광산 등에 많은 한국인들이 강제 동원되었다.

밝은 방에는 <해초이야기> 비디오와 사진 2점, 하도리 해녀 삼촌들의 탈의실 8개가 모델링된 작은 집을 설치했다. 탈의실은 오늘날의 불턱*. 이 집은 모래 위에 해초 조각들과 함께 전시되었다. <해초이야기>의 비디오는 하도해녀합창단의 ‘제주아리랑’ 노래를 담았다. 이 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해녀 공동체 중 하나인 하도는 20세기 중엽 일제의 제주 해녀 항일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제주도는 관광지로서 널리 알려졌지만, 열대스토리에 등장하는 것처럼 전쟁의 흔적이 많은 곳이다. 오키나와나 괌처럼 관광과 군대의 주둔이 양면으로 존재한다. 그들의 노래는 그들의 일상에서 출발하지만 섬을 위로하는 노래로 들어도 좋을 것이다.

*불턱 : 둥그렇게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고 노출을 차단한 곳으로, 해녀들이 물질을 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거나 쉬기 위해 만든 공간. [cycloneslider id="20212"]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서 조각 <땅탑>을 선공개했다. 미리 공개된 사진 속 작품이 놓인 자연 풍경이 작품에 대한 상상력을 증폭시켰다. 제작 과정을 들려줄 수 있나.

그 사진은 <땅탑>의 테스트 사진이다. 실외에 설치되기 때문에 날씨와 흙의 상태 등 변수가 많아서 미리 만들어 본 것. 글로 설명하면 제작 방법은 간단하다.

흙을 넣을 거푸집을 제작하고 그 거푸집에 흙을 조금씩 넣으며 다져나가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지만 다짐을 하고 거푸집을 제거하기까지 여러 물리적인 것들을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한국 사회에 지속되었던 (혹은 앞으로도 계속될) ‘개발’ 그리고 급변하는 ‘도시’에 대한 리서치와 이야기들을 상징적으로 담으려고 했다.

<땅탑>은 서울시립미술관 운영 시간동안 미술관 마당에서 관람할 수 있다.

https://www.instagram.com/p/CwxmbttRHNs/?img_index=1

｜해당 작품과 함께 깜짝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이 퍼포먼스가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뭘까? 그저 작품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장치 중 일부일까, 비로소 작품을 완성시키는 퍼즐일까, 혹은 그 무언가.

대중에게 공개되는 퍼포먼스는 이번이 처음이다. 퍼포먼스는 평소에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쑥스러움도 많고. 다만 퍼포먼스를 통해 우리의 노동을 나눌 수 있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공개하는 퍼포먼스는 작업의 마지막 과정을 관객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제작 과정에서 노동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몸짓을 하는 것이 더 퍼포먼스답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흙다짐을 하면서 모두 함께 발을 구른다든가, 모두 머리를 조아려 기울기를 확인하다든가, 미술관 앞마당을 함께 빗자루질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과정이며 함께 하는 경험이다. 특별히 퍼포먼스라는 장르보다 우리는 상황 속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서로의 반응에 더 관심이 있다.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제주도의 해녀를 주제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해녀들과 함께 긴밀한 협력하에 탄생했다는 점이 참 궁금했다.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긴밀했을까.

이 작업을 하기까지 여러 일들을 했었다. 그중 제주춤예술원과 함께 ‘벗이 있으면 물질한다’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해녀 삼촌들을 만나게 되었고, 해녀 합창단을 이끄는 음악가 방승철과 무용가 김미숙 두 분에게 많은 것들을 배웠다. 우리가 관계성을 만들었다기 보다 그분들과 해녀 삼촌들과의 끈끈함에 우리가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

｜ 페어 기간 동안 매일 인터랙티브 퍼포먼스 ‘바다의 맛’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본인들도 직접 참여하는 걸까? 조금만 스포 해준다면.

‘바다의 맛’은 일종의 상징인데, 바다에 대해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방법이다. 최근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유출이 시작되어 매우 슬프다. 이제 그 바다의 맛도 다르게 생각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된다.

퍼포먼스 '바다의 맛'은 일종의 교환이다. 퍼포먼스 상황에서 무언가를 건네고 받는 때 이끼바위쿠르르가 함께 한다. 전시장이 아니라서 여러 한계가 있지만 간단하게 교환함으로써 바다에 대해 떠올려 보는 것이다.

해녀 삼촌들은 바다에서 씨를 뿌리고 가꾸고 채집한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그들의 일은 사냥이 아니라 농사다. 해녀들은 서로를 벗으로 생각하며 서로 연결되었기에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벗이 있어야 물질한다’는 그런 의미이다. 그들은 바람을 읽고 물을 느낀다. 어떤 것에도 욕심을 가지지 않고, 그저 바다에 적응하는 방법을 벗들에게 전수한다. 우리는 그런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현 상황에서 그런 태도들이 이야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중이 미술에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대중은 함축하고 은유하는 미술에 여전히 어려움과 벽을 느끼는 듯하다. 작품을 선보이는 입장에서 이번 프리즈를 비롯해 관객들이 좀 더 캐주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동시대 미술이 대중과 원활한 소통을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데 동의한다. 제도적으로 기관들이 퍼블릭 프로그램 등으로 여러 노력을 한다고 알고 있다. 미술의 역사나 흘러온 과정 등을 이해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 미술은 지속적으로 저항의 움직임들을 가지고 있고, 복잡해진 상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미술의 운명이 아닐까.

이끼바위쿠르르 인터뷰 “우리는 비주얼 리서치 밴드입니다”

관련 기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