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레시피의 향수, 산타 마리아 노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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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피부에 닿는 순간 사라지고, 형태도 색도 없다.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80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약재와 향을 만들어온 약국이 있다. 수도사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약초를 심던 그 공간에서 지금도 향수와 비누가 팔린다.

#006 향수
산타 마리아 노벨라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들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정착하면서 약초를 재배했다. 향수를 만들려던 게 아니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1381년, 그 정원에서 자란 장미로 만든 장미수가 전염병을 막아주는 효과적인 청결수로 팔렸다. 약재였던 것들이 향수가 되고 비누가 됐다.
Chapter 1
수도사들의 약초 정원
| 브랜드를 한 마디로 소개한다면?
800년 전 약초 정원에서 시작된 향수 브랜드.
| 치료를 위해 만들던 곳이 향수·뷰티 브랜드가 됐다.
수백 년 동안 이곳에서 만든 건 전부 약이었다. 과거 장미수 역시 위생과 청결을 위한 용도였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면서 약의 자리를 향수와 화장품이 채웠다. 단절이 아니라 같은 기술이 방향을 바꾼 것이다.

| 오랫동안 수도원 안에서만 운영됐는데 대중에게 문을 연 계기는?
어느 날 갑자기 결정한 게 아니었다. 수도원 밖으로 제품을 찾는 수요가 점점 커졌고 결국 전문가에게 운영을 맡겨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수십 년에 걸쳐 쌓인 수요가 만든 결과였다.
Chapter 2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첫 알코올 향수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이름을 유럽에 알린 건 향수 한 병이었다. 프랑스 왕실로 시집가게 된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édicis)가 조향사 레나토 비앙코(Renato Bianco)를 데려갔고 그가 프랑스에서 만든 향수 ‘여왕의 물’이 유럽을 흔들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당시 향수는 오일을 베이스로 써서 시간이 지나면 변질됐다. 그런데 이 향수는 알코올을 베이스로 써서 변하지 않았다.
| 알코올 베이스가 왜 그렇게 큰 차이를 만들었나.
오일 베이스 향수는 냄새가 변하고 상했다. 알코올은 변질되지 않고 피부에서 빠르게 퍼진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레시피가 살아있는 이유다.
| 왕실을 위한 제품이 이제는 누구나 살 수 있다.
처음부터 희소성을 정체성으로 삼지 않았다. 왕실 납품보다 훨씬 먼저 대중에게 문을 열었으니까. 접근성은 넓어졌지만 제품의 기준은 그대로다.
| 가장 오래된 향수와 지금 만드는 향수의 공통점은?
원료는 바뀌어도 만드는 방식의 논리는 같다. 명확한 재료, 명확한 역할, 명확한 기원.
Chapter 3
역사적 배경이 만들어낸 제품들
장미수와 도둑의 식초. 이곳의 오래된 제품 중 일부는 전염병이 만연한 시대에 사람들의 청결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위협이 사라지면서 스킨케어로 바뀌었고 지금은 토너로 팔린다.
| 장미수가 토너로 바뀌었다.
이름과 식물은 남았지만 조성은 용도에 맞게 바뀌었다. 고정된 제품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진화한 것이다.
| 오래된 레시피를 지금 기준에 맞게 바꿔야 했던 적이 있나?
있다. 규제로 인해 일부 원료를 교체했고 그 작업은 내부에서 한다. 조성이 바뀌어도 원래 제품의 성격은 유지한다.
Chapter 4
포푸리, 왁스 타블렛, 카르타 다르메니아
포푸리는 수백 년 전 필사본에 기록된 레시피를 따른다. 건조된 꽃잎과 잎을 오일과 함께 천천히 침출하는 방식으로 토스카나 장인들이 손으로 빚은 테라코타 항아리에 담아 보관한다. 왁스 타블렛은 건조된 꽃이나 과일로 장식하고 리본을 달아 옷장 안에 걸어두는 제품이다. 카르타 다르메니아는 향기 오일에 적신 얇은 종이로 불꽃 없이 서서히 향을 공간에 퍼뜨린다.
| 카르타 다르메니아가 불꽃 없이 향을 내는 원리는 무엇인가.
종이가 타지 않고 천천히 그을리도록 처리돼 있다. 향이 순식간에 날아가지 않고 서서히 퍼지는 이유다.
| 수작업을 고집하면 수요를 맞추기 어렵지 않나.
생산 속도를 높이지 않는다. 그래서 물량이 소진되는 경우도 있다. 만드는 방식을 바꾸느니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 제작 기간이 가장 긴 제품은?
아이리스다. 수확 후 뿌리를 3~5년 건조·숙성시켜야 특유의 향이 나온다. 향수 업계에서 가장 비싼 원료기도 하다.
Chapter 5
800년째 같은 자리
피렌체 비아 델라 스칼라 16번지. 수백 년 된 벽화가 걸려 있고 17세기 도자기 항아리들이 진열장 안에 있다. 박물관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운영 중인 가게다. 처음 대중에게 열렸던 바로 그 공간에서 지금도 제품이 팔린다.
| 80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킨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한때 환자에게 치료제를 나눠주던 공간이 지금도 사람들을 맞이한다. 장소 자체가 이야기의 연속이다.
| 역사적 건물을 유지하면서 현대 사업을 운영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는지.
건물이 현대 운영에 필요한 걸 다 수용하지 않는다. 비누 생산도 공간이 부족해 외부로 나갔다. 있는 것 안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 본점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면?
수백 년째 같은 방에 놓인 도자기 항아리를 직접 보는 것, 오래된 레시피와 지금의 제품이 같은 진열장 안에 있는 것. 사진으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 건물 보존과 사업 사이에서 타협한 적이 있나?
수백 년간 종교 공간으로 쓰이던 예배당을 판매 공간으로 바꿨다. 이때를 기점으로 향수와 화장품이 중심이 됐다.
| 피렌체가 아니었다면 이 브랜드가 달라졌을까.
메디치 가문이 과학과 식물 연구를 후원한 도시였고 교역이 활발해 제품이 유럽 왕실까지 닿을 수 있었다. 다른 곳이었다면 지역 약국에 머물렀을 것이다.
| 지금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헤리티지인가 럭셔리인가 웰니스인가.
그 경계 어딘가에서 다음 방향을 고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