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거들 뿐!

어떤 옷을 걸쳤는지가 중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모습’인지보다 어떤 ‘브랜드’인지를 신경 쓰고 자신이 걸친 브랜드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고 믿던 시절. 여자들은 땀 흘려 일한 돈으로 명품 백을 사기 위해 계를 들기도 했고 중고 장터를 뒤져서라도 명품의 가치를 손에 쥐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브랜드와 명품에 목숨 걸던 시절, 가격표에 붙은 숫자만큼 가치를 부여해주던 시절은 차라리 순수했을까? 적어도 돈의 가치로 등급을 나누는 것만큼은 간단 명료했던 시기였다.

그 시절에는 다리가 짧거나 머리가 커도 현란한 스타일링 솜씨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출 수 있었고 가끔씩은 멋있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패션의 평등시대라고 할까? 돈이 있으면 누구나 멋을 내고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던 과거에는 미니멀리즘과 해체주의의 미학, 아방가르드한 전위 패션이 ‘새롭다’는 표현과 동의어로 여겨지며 멋을 낼 수 있었으니까.

며칠 전 요즘 유행하는 부츠 컷 데님과 언뜻 비슷해 보이는 나팔 바지에 낡은 슬링 백 슈즈를 끌며 압구정 거리를 횡단하던 여자를 마주한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물이 된 아이템이라도 남들이 알아주는 브랜드의 것이라면 멋져 보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거리를 나선 걸까?” 뿌옇게 바랜 반복되는 로고 패턴이 어림잡아도 10년은 돼 보였다.

애석하게도 2017년의 트렌드는 그녀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이제 어떤 옷을 입었느냐 보다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입었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도 뉴욕 패션 위크를 종횡 무진하는 셀럽들을 보면 이러한 경향이 피부에 와 닿는다. 과장된 옷이 사람을 가리는 일도 없고 멋있다는 옷을 경쟁적으로 사 입는 행위는 시시하게 여겨진다. 지금은 내가 입은 옷이 쿨 해야 하고 어떤 옷이든 ‘나처럼’ 입되, 멋이 나야 한다. 스타일에 자신만의 감각과 태도, 즉 매너를 가미하는 것이야말로 패션의 완성인 셈! 옷을 보면 그 옷의 주인공이 떠오르는 것이야말로 요즘 멋쟁이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물론, 하이 패션의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막강한 파워를 지닌 하이 패션은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하이 패션 조차 일상성을 강조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니 부디 머리부터 발끝까지 패션쇼의 모델처럼 입고 해당 브랜드 매장에 들러 자신을 과시하는 일은 없기를. 오트 쿠튀르적인 터치가 가미된 실험적인 옷조차 자연스러움과 일상성을 가미해야만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좋아요’를 눌러주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멋쟁이는 이런 모습이다. ‘나른한 오후 카페에 앉아 헝클어진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커피를 마시는 그녀. 각기 다른 디자인의 반지를 여러 개 레이어링 했지만 하나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 파자마 차림의 그녀는 편안해 보이지만 그녀의 발끝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아마도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 봤던 쇼피스 힐 때문이겠지. 아찔한 스틸레토와 나른한 파자마 수트의 묘한 긴장감은 지금 이 순간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가 뿜어내는 아우라를 거들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