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 한 대 값에 맞먹는 가격표를 달아도 몇 년씩 기다려야 가질 수 있는 백.

에르메스의 버킨백은 희소가치가 높은 만큼 여자들의 욕망을 부채질한다. 이 백은 알다시피 제인 버킨에 대한 헌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녀는 평생 하나의 버킨백을 들고 다니는 수수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몇 해 전, 버킨백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한 그녀의 요청은 우리에게 패션의 도덕성, 그 허용 범주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에르메스의 버킨 백 중에서도 가장 고가에 팔리는 크로커다일, 즉 악어가죽 백이 논란의 주인공이 된 사연은 이렇다. 베지테리언이 아닌 이상, 나약한 인간의 의식주는 동물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합당한 죽음이 아닌, 인간의 과욕으로 잔인하게 죽어가는 동물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최상의 가죽을 얻기 위해 살아있는 악어의 가죽을 뜯어내는 영상은 제대로 마주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지금껏 최소한의 윤리적 도축을 통해 얻어진 가죽이라고 믿었던 명품 브래드의 잔인한 이면이 드러나자 제인 버킨은 그런 백에 자신의 이름이 붙는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는 비단 하나의 브랜드, 악어 가죽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쿤 털과 토끼털, 여우 털과 밍크 같은 동물의 가죽은 숨을 거두기도 전에 꼬챙이에 끼워져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한 동물들의 것이다.

태초에 인간은 더위와 추위를 극복하며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았고 그 과정에서 따뜻한 털을 얻기 위한 사냥을 했다. 숨통이 끊어진 동물의 가죽은 질 좋은 털옷이 되었고 살은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쓰였다. 생존 이외에 불필요한 살생은 없었고 인간을 위한 동물의 죽음은 숭고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 우리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사치를 위한 잔인한 살생을 서슴지 않으며 자신의 부를 과시하거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추악하고 위태로운 현실을 직시해보자.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한 소비를 고민해보자.   

다행스럽게도 패션 산업은 진화하고 있다. 동물의 가죽과 털을 배제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스텔라 매카트니, 자연스럽게 떨어진 거위의 털을 사용하는 캐나다 구스 같은 브랜드가 앞장서는 동물 보호는 명품의 가치 기준을 바꾸어놓았고 도덕적 소비를 부추겼다. 이제 사람들은 형형 색색으로 리얼 퍼의 한계를 극복한 쉬림프의 인조 퍼 코트에 열광하고 리얼퍼에 맞먹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지갑을 연다.

패션이란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백을 드는지는 여전히 중요하다. 옷차림은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대변하고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가장 직관적인 표현수단이니까. 아직도 잔인한 방식으로 거둬들인 동물의 가죽을 걸치고 미소 짓고 있는가? 주변을 경계하라. 당신의 등 뒤에서 구시대적이고 한 물간 스타일이라는 수근 거림에 귀 기울여라. 당신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것인지도 모르니까.